검찰은 인터넷 방송 ‘라디오 21’ 전 대표 양경숙 씨에 대해 지난 4.11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수십억 원의 돈거래를 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런데 양 씨 사건에서 또다시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양 씨가 지난해 말 30억 원을 투자한 세무법인 대표 이씨와 부산 건설사 대표 정씨를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소개해줬다는 겁니다.
양경숙 씨는 2001년 새천년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들어왔고, 친노 성향의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문성근, 명계남, 유시민 씨를 알고 있고, 박지원 원내대표와도 평소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특히 4.11 총선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와 문성근 전 대표에게 각각 후원금 500만 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그리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양 씨가 박지원 원내대표와 친분을 내세워 이 씨와 정 씨에게 민주통합당 비례 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30억 원을 받았고, 이 돈의 일부가 민주통합당 실세 정치인 여러 명에게 넘어갔을 것이라는 겁니다.
검찰은 혹 돈이 건네진 실세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 박지원 원내대표라고 보는 걸까요?
물론 양 씨는 단순 투자계약일 뿐 공천 장사는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고 있지만 말입니다.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양씨 등과는 정치권에서 만나 아는 사이라며 이들로부터 각각 500만 원씩 후원금을 받았지만 모두 합법적인 범위 내였다고 밝혔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양 씨 등 세 사람 모두 비례대표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며, 고위층에 공천 헌금을 줬다면 최소한 서류는 통과시켰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수사를 대검 중앙수사부가 한다는 겁니다.
중수부는 말 그대로 검찰총장의 하명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의 사령탑입니다.
대기업이나 고위공직자, 유력 정치인의 부정부패 등 대형 사건이 아니면 좀처럼 나서지 않는 곳입니다.
선거 사건은 대검 공안부의 지휘를 받아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하는 게 우리가 통상 보아왔던 모습입니다.
양 씨 사건 역시 전형적인 선거 사건인데, 왜 대검 중수부가 나섰을까요?
민주통합당 정성호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성호 / 민주통합당 대변인
- "양정숙 비리 사건이 정치적 외압 커서 중대한 사건인지 묻고 싶습니다. 단순 투자, 아니면 공천 빙자 사기 사건을 대검중수부 나서야 한다면 이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심각히 훼손됐습니다. 검사들 스스로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 봐라, 과연 정상적인지 곱씹어보기를 바랍니다."
검찰은 제보가 중수부로 들어왔고,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는 중수부에서 자주 하는 수사니 이상할 것이 없다는 해명입니다.
그러면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헌금 사건은 왜 중수부가 하지 않고, 부산지검으로 내려 보냈을까요?
혹 검찰은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단순 선거사건이니 지방 검찰로 내려 보내고, 양 씨 사건은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된 대형 사건으로 보고 중수부에 배정한 걸까요?
혹 박지원 원내대표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중수부에 사건을 배정한 걸까요?
박지원 원내대표와 검찰의 질긴 악연은 이미 잘 알려졌습니다.
2003년 현대그룹 대북송금 사건으로 박 원내대표는 3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후 사면복권 된 박 원내대표는 2009년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를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시켰습니다.
1대1 무승부입니다.
마지막 승부가 남은 걸까요?
최근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다시 한번 박지원 원내대표를 소환했습니다.
검찰 소환을 거부하며 버티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갑자기 제 발로 검찰에 찾아가 검찰의허를 찌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고서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8월1일)- "황당한 의혹에 대해 충분히 얘기했기 때문에 검찰에서도 잘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터무니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얘기했습니다."
검찰은 박지원 원내대표를 9월 초 쯤 구속 기소할지, 불구속 기소할지를 놓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구속 기소를 하려면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를 요구해야 하고, 구체적 물증도 확보해야 하는데 간단치 않다는 말도 들립니다.
어쨌건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이어 이번 양 씨 사건으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려는 걸까요?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모양새입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오늘 검찰 몫으로 대법관을 지내고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은 안대희 대법관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안대희 전 대법관, 대법관 임기를 마친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새누리당으로 향했습니다. 과연 사법부의 최고의 권위직인 대법관을 역임하고 이렇게 빨리 정치권으로 갈 수 있는지 모든 사법부가 망연자실하고 우리 국민 역시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한나라당 차떼기 수사를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검찰 후배들로부터 신망받는 그를 공격하는 것은, 검찰 전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고 말하면 너무 억측일까요?
검찰 출신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박지원 원내대표의 집요한 공격으로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져 검찰이 내심 불쾌해했듯 말입니다.
이러다가는 검찰 몫의 대법관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검찰로서는 검찰 출신 인사들에 대해 집요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곱게 보일리 없을 것 같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눈엣가시인 것은 검찰 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모든 의혹은 박지원 원내대표로 통한다며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말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서병수 / 새누리당 사무총장
-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후보 이해찬 당대표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담합으로 공공연하게 권력 나눠먹기 시도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는 민주통합당 아닌가? 이런 와중에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면서 수십억 원 챙긴 사람이 전격 체포됐다.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의 이름이 또다시 거론되고 있다. 모든 의혹이 거론된 데에는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으로 통하는 듯하다. 엄중한 수사 자처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투자사기 운운하면서 발뺌만 하는 건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할 짓이 아니란 것을 국민은 잘 알 것입니다."
어쨌든 검찰과 박지원 원내대표는 조만간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다시 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면, 그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여기서 끝난다고 봐도 무리는 아는 것 같습니다.
거꾸로 검찰이 패한다면, 치명상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여론의 역풍은 물론이거니와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힘 빼기도 본격화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박지원 원내대표와 검찰의 승부는 날이 선 만큼 더 오래 걸려 대선 승패에 따라 결정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