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이 늦었던 터라 지금이라도 인선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국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장관 후보자가 먼저 발표된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정부조직개편안 처리의 발목 잡기를 하고 있다고 야당 탓을 하고,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당선인이 일방통행을 하며 야당을 무시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자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15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 당선인(2월15일)
- "새 정부가 제대로 출범할 수 있도록 야당에서 한 번만 도와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정부조직개편안이 하루빨리 통과하지 못하면 새 정부는 조각과 인선작업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야 협상은 결렬됐고, 박 당선인은 급기야 어제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기획재정부 장관과 신설될 미래과학부 장관 인선을 발표했습니다.
기재부 장관이 부총리급으로 될지 안될지, 미래부가 신설될지 안될지도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박 당선인 측은 기재부 장관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는 것을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미래부 역시 관할 업무 조정이 문제지 부처 신설 자체를 야당이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문제 될 게 없다는 견해입니다.
그리고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당선인의 정부조직개편안은 야당이 그대로 수용하는 게 관례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야당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박기춘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2월17일)
- "협상의 여지를 없애려고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고 야당에 백기를 들라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대학입시 중인데 합격자부터 발표하는 웃지 못할 사례로 남을 듯싶습니다.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이런 불상사는 이미 예견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할 때 민주통합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 내용을 아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박 당선인이 사전에 야당과 충분히 협의했으면 정부조직개편안 통과가 수월했을까요?
또 달리 생각하면, 야당과 협의 과정에서 박 당선인의 계획이 사전에 노출되고 국정운영이 처음부터 꼬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고, 오늘도 국회에서는 조직개편안 처리가 무산돼 새 정부 출범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 번만 도와달라는 박 당선인. 그리고 돕고 싶어도 도울 명분이 사라졌다는 야당.
정부 조직개편안을 둘러싼 파열음은 인사 청문회도 수월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와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문제와 과거 행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김 후보자는 외국 무기 중개업체에서 거액의 자문료를 받았고, 황 후보자는 공직 퇴직 후 로펌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습니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저축은행 뱅크런 사태 때 오히려 예금을 인출하고, 16억 아파트를 딸에게 편법 증여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미국 국적자인 게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쩌면 보안이 필요한 국가 첨단 과학기술과 R&D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인사청문회 통과가 수월할 것 같지 않습니다.
야당과 관계가 썩 좋지 못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희상 /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2월18일)
- "민주당은 민주당 할 일 하겠습니다. 강력한 견제와 비판으로 잘못된 길로 빠지는 박근혜 정부를 바로잡겠습니다. 정부조직개편안 장관 인사청문회 호라락호락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새누리당은 신상 털기로 발목을 잡지 말고, 새 정부 출범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제 한파, 북핵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새 정부 출발이 순조롭게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2월18일)
- "국회 선진화법이 적용되는 19대 국회에서 새 정부 조직법 처리는 선진화 시험대가 되므로 원만한 선진 국회의 모습을 보입시다. 2월7일 당선인과 여야대표 협의 정신 기대합니다."
민심은 어떨까요?
박 당선인이 야당과 대화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야당이 무리하게 발목 잡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박 당선인의 최근 지지율이 50%대 밑으로 떨어진 것을 보면, 여론 역시 반반으로 갈릴 것 같습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새 정부 출범부터 국회와 청와대, 여와 야의 관계는 얼어붙을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민생을 위해, 국민 통합을 위해 하나가 되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던 박근혜 당선인, 새누리당,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모습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