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 꼬리 부분이 방파제에 부딪힌 여객기가 가까스로 멈추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탈출용 슬라이드 두 개가 동시에 펼쳐집니다.
승객이 하나 둘 뛰어내리고, 꼬리 쪽에서도 승객이 뛰쳐나옵니다.
▶ 인터뷰 : 사고 현장 촬영자
- "세상에나. 승객들이 뛰어가고 있어."
구급차와 소방차가 도착하고, 소방관 2명이 항공기로 올라가 구출작업을 펼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순간 검은 연기와 화염이 천장을 뚫고 뿜어져 나옵니다.
사고 순간부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90초.
이 90초 동안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항공기 사고에서는 사고 직후 90초가 생사를 가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승객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하나 둘 귀국하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부축을 받고, 모자를 눌러쓰고 입국장에 들어온 그들에 무슨 말을 건넬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난 것만이라도 다행이라는 말밖에요.
야속하겠지만, 그래도 언론이다 보니 그들을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악몽을 겪었던 탑승객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사고 항공기 탑승객
- "경황이 없어서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요. 다른 다치신 분들 너무 많으셔서."
▶ 인터뷰 : 사고기 탑승객
- "30열에 앉았고 정신을 잃어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오른쪽 날개 근처에 앉았는데 날개 뚫린 곳으로 그냥 뛰어내렸습니다."
▶ 인터뷰 : 사고 항공기 탑승객
- "(안내방송 잘 됐나요?) 비상탈출 방송을 들었고요. 충돌 직전에는 충돌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고요. (마지막에 상승했다는데 느끼셨어요?)그것까지 느낄 경황이 없었어요. 충격이 바로 2번 왔기 때문에."
하늘이 도왔다는 말밖에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생사를 가른 건 침착한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승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습니다.
캐빈 메니저인 이윤혜씨는 꼬리뼈 골절을 입은 상태에서도 마지막까지 비행기에 남아 부상자들을 모두 탈출시켰습니다.
이 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윤혜 / 최선임 승무원
- "손님이 우선 항공기에서 빨리 탈출하시는 것이 저의 첫 번째 목표였기 때문에 한 분이라도 더 탈출시키도록 하는 것, 그 생각만 가지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랜딩(착륙)했을때 꼬리뼈가 골절됐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병원가서 알았어요. 탈출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몰랐어요."
승무원 김지연씨도 기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부축했습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열두 살 어린이를 업고 달리기도 했습니다.
미국 현지 소방국장은 '승무원들이 놀라운 팀워크로 많은 이의 생명을 구했다. 이들은 영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인터뷰 : 조앤 헤이스 / 샌프란시스코 소방국장
- "아시아나 승무원들은 사고 상황을 승객들에게 먼저 알려줬고 모든 승객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기내에 머물렀습니다."
정말 이들은 영웅이었습니다.
90초 동안 이어진 이들의 헌신적인 구조활동으로 많은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들의 희생과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다시 사고 순간으로 돌아가 시간을 재구성했습니다.
미 교통안전위원회가 비행기에서 수거한 블랙박스를 일부 분석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을 준비하던 여객기는
충돌 82초 전, 고도 약 488m를 날고 있었습니다.
조종사는 착륙을 위해 자동항법장치를 끄고 수동조종으로 전환합니다.
충돌 54초 전, 고도 305m까지 순조롭게 하강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20초가 지난 충돌 전 34초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여객기 고도가 152m로 떨어지고, 속도도 떨어집니다.
16초 전에는 속도가 활주로 적정 접근 속도인 254km에 크게 못미치는 218km로 떨어졌고, 충돌 8초 전 40m 상공에서는 207km/h까지 속도가 떨어졌습니다.
조종사들도, 그리고 관제탑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고 조종간을 당겨 다시 상승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충돌 4초전 조종간이 떨리며, 추락 경고장치인 스틱 세이커까지 발동합니다.
놀란 조종사들은 다시 충돌 1.5초 전 고-어라운드 즉 재상승을 시도하지만, 항공기 꼬리 부분이 방파제 턱에 충돌했습니다.
충돌 3초 전 속도는 191km로 최저였습니다.
▶ 인터뷰 : 데보라 허스먼 / 미 교통안전위원장
- "충돌 3초 전 기록에 의하면 항공기는 103노트(191km/h)로 가장 낮은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충돌 54초 전 비행기 속도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뭘까요?
조종사가 이를 인지하고 속도를 다시 높이려 했는데 왜 비행기는 다시 상승하지 않았던 걸까요?
미국 언론은 조종사 과실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국토해양부와 아시아나 항공 측은 기체 결함 가능성도 보고 있습니다.
보잉 777 기종에는 자동으로 속도를 유지하는 오토 스로틀이라는 장치가 있는데, 왜 갑자기 속도가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보잉 777기종이 이전에도 수차례 꼬리가 부딪치는 사고를 낸 적도 있습니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보다 자세한 것은 블랙박스를 더 분석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섣부른 추측과 예단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쩌면 더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살아남은 것에 모두 감사해야 할 따름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