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단 개성공단 정상화는 순항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내일부터 공단 현지 생산 설비 점검을 위해 개성을 방문합니다.
내일은 1차로 전기와 기계업종 기업관계자들이 공단을 방문하고, 모레는 섬유와 봉제 업종 기업이, 26일부터는 피해가 크고 정비가 시급한 기업 순서로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전력을 비롯한 인프라 시설점검을 위한 시설점검팀 40명은 오늘 차량 20대에 나눠타고 개성공단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이쯤 되면, 개성공단 정상화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우리 측이 모레 갖자고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입니다.
북한도 흔쾌히 수용했는데, 문제는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했다는 겁니다.
내일 금강산 실무회담을 열자는 겁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 (8월19일)
- "개성공업지구 문제가 해결의 길에 들어선 오늘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어야 하며 그것은 북남관계 개선에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북한은 어제 오후에도 이런 요구를 다시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달 25일이나 실무회담을 하자고 수정제안을 했습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의 말입니다.
금강산 관광 문제는 중단 5년이 지난 만큼, 조급하게 회담을 개최하기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통일부가 이렇게 수정제안을 한 이유는 뭘까요?
북한의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접촉을 아예 거절하지 않은 것은 자칫 이산가족 상봉도 깨질까 우려해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분리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한 겁니다.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 관광 재개 요구를 당장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와도 연계돼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남북 간 경협을 중단시킨 5.24 조치의 해제를 의미합니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5.24 조치를 해제할 명분이 없습니다.
또 금강산 관광은 현금이 북한으로 넘어가는 만큼 유엔의 북한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 인터뷰 : 김 승 / 전 통일부 장관 정책 보좌관
-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순간 (북한은) 교류 협력도 요구할 테고, 대북 지원 경제지원을 요구할 겁니다."
북한도 어쩌면 이런 점들을 의식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그토록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가 우리와 국제사회의 경제봉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임을 알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자, 이제 북한이 어떻게 나올까요?
일단 시급한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하고, 금강산 관광재개 실무접촉은 다음 달에나 하자는우리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얼마 전 그랬던 것처럼 이산가족 상봉도 아예 깰까요?
남북관계의 또 다른 함수는 바로 을지훈련과 북한 인권 문제입니다.
북한은 이번 주부터 시작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대해 결국 어제 비난 성명을 내놨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조평통 대변인 담화(8월20일)
- "남조선 당국자가 대화와 평화를 운운하면서도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전쟁태세 강화를 역설한 것은 극단적인 대결선동이다. 전쟁과 평화는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 남조선 당국자들은 우리의 성의와 인내성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남조선 당국이 계속 우리와의 대결을 추구한다면 북남관계는 또다시 악화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수습할 수 없는 파국적 후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죠.
지하벙커 회의를 주재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임을 뻔히 아는데, 표현은 '남조선 당국자'라고 했습니다.
박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또 과거 한미 훈련이나 우리 군사훈련에 대해 썼던 피의 보복, 응징, 불바다와 같은 거친 표현이 보이지 않습니다.
1년 전 을지훈련에 대한 북한의 논평입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지난해 8월 18일)
- "우리의 영토에 단 한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진다면 즉시 섬멸적 반 타격을 안기고 조국통일 대전으로 이어가라."
북한이 비난성명을 내놓으면서도 스스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걸까요?
어쨌든 북한도 막 좋아지려는 남북관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올해 설립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어제 서울에서 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는데요.
한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신동혁 / 탈북자
- "군대들이 어떤 사람을 끌고 나와서 나무기둥에 묶는 것으로 보게 됐었고…. 총소리 처음 들었을 때 놀라서 뒤로 넘어져 공포에 떨었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됐고…. 쥐가 나타났을 때 간수에게 보고해서 승인을 해주면 잡아먹을 수 있었고요. 엄마와 형이 탈출하려고 한다는 확신을 갖고 밖에 소변보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학교로 뛰어가 담당 선생님에게 신고했습니다. 6개월 후 저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 당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국내 대북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왜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비록 정부나 국내 단체가 아닌, 유엔인권조사위원최가 개최한 공청회지만 장소가 서울이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얼마든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북한이 이를 빌미로 개성공단이나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관광을 또 전면 무효화한다고 나올까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북한인권,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다차원 방정식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한꺼번에 푸느게 맞을까요? 아니면 함수 하나하나씩 제거해 가는 방식으로 풀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통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판단해야 할 몫인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