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막판 새누리당 내에 역풍이 불고 있다. 19일과 20일의 경선 여론조사 발표 결과 친박계 거물들이 줄줄이 경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특히 친박계 실세 김재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진박 지원까지 나섰던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경선 패배는 친박계로선 당초 예상치 못했던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당 안팎에선 그동안 단수추천을 통해 사실상 친박계 전략공천이 자행된 데 대한 민심의 반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19~20일 이틀동안 총 84개 지역구의 경선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결선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18곳을 제외하고, 이틀간 66곳의 최종후보가 결정됐다. 20일 기준으로 새누리당은 총 215곳의 후보를 확정해, 34곳의 발표만 남겨놓게 됐다. 이틀간 발표에서 경선 탈락한 현역 의원 10명으로, 지금까지 새누리당 현역 의원 중 총 36명이 낙천했다. 이전까진 단수추천으로 배제된 현역(20명)이 훨씬 많았지만, 주말 발표로 인해 경선 탈락한 현역(16명)도 이와 비슷한 숫자를 이루게 됐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상향식 공천의 효과가 최종 경선으로 인해 서서히 빛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선 결과는 ‘막판 역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박계 주요 인사들의 패배가 두드러졌다. 새누리당 원내수석과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재선 김재원 의원이 선거구 조정으로 인해 경선에서 맞붙었던 김종태 의원에게 패배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고 서초갑에 출사표를 던져 여성 후보 대결을 벌였던 조윤선 전 수석도 이혜훈 전 최고위원에게 후보 자리를 내줬다. 박심(朴心)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되던 유력 주자들이 비박계 경쟁자에게 고배를 마신 것이다.
20대 국회 입성이 무난해보이던 주자들의 경선 탈락도 빈번했다. 범 친박계로 분류되는 3선의 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지역 경선을 넘지 못했고, 허남식 전 부산시장도 경선에서 패배했다. 대구 북갑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으로 자리를 옮겨 공천 가능성을 높여가던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도 탈락했다. 당초 새누리당 후보는 친박계가 대다수 차지할 것으로 보였으나 ‘러시안 룰렛’ 경선을 거치면서 기세가 다소 꺾이게 된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계파 공천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판심리”이라며 “막판으로 가면서 현역 탈락율이 높아지는 것도 공천이 잘못됐다는 지지층의 자각증세”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친박계는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인천 연수을), 홍문종 의원(경기 의정부을) 등의 후보 확정에 만족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친박계 단수추천이 두드러지고, 현역 물갈이 비율 또한 낮은 밥그릇챙기기 공천으로 진행되자, 민심이 비박계 쪽으로 쏠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신율 교수는 “서초갑은 이혜훈 전 최고위원이 오랜 기간 표심을 다져놓은 지역이었다. 조 전 수석의 경선 탈락은 ‘하향식 꽂아넣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여론조사로 증명된 셈”이라며 “중앙 정치에서 활동을 주로하던 김 전 특보의 경선 패배도 지역 관리가 더욱 중요함을 시사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종훈 평론가도 “(친박계 실세가 떨어진 반면)심재철·정병국 의원 등 수도권 비박계 중진이 대거 생존한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정권이나 당내 실세라는 타이틀보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으면서 지역구 관리에 힘썼던 인물들이 경선의 수혜를 입었다는 해석이다.
이번 경선 여론조사 결과로 김 대표의 입지가 다소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친박계 인사들이 탈락하는 동시에 현역 물갈이 비율도 높아져 ‘상향식 공천=당 쇄신’을 강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대표의 측근들은 단수추천과 경선, 어느 쪽에 속했든 모두 살아남아 ‘식구 챙기기’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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