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폐족 위기'에 몰린 친박(박근혜)계가 보수 지지층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등 대여론전을 펼치며 반격에 나섰다. 정치생명의 위기에 빠진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호위무사'를 자처한 강성 친박 의원들을 통해 '사저 정치'를 펼치며 향후 검찰 수사는 물론 대선정국에서도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3일 친박 의원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수세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일제히 엄호사격에 나섰다.
친박 핵심인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 1시간 20여분간 비공개 면담했다. 조 의원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이) 적응을 잘 하고 계지는 것 같지는 않다.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의 근황을 알렸다. 기자들의 질의응답 중 거듭해서 "다리를 다쳐 힘들어한다",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서 고초를 겪었다는 점을 강조해 여론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한편 지지층을 집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조 의원은 "보일러가 안돼 거실이 너무 춥더라"며 갑작스런 파면 결정에 사저 복귀 준비가 미흡했음도 드러냈다. 전날 박 전 대통령의 집 안까지 들어갔던 '우리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장민성 회장은 조 의원의 곁에 서있다가 기자들에게 "집 안에서 물도 샌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촛불민심에 대한 거친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법률가 출신답게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재 결정은 법리를 무시한 정치판결이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날 조 의원의 '사저 회동'이 이뤄진 시점에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는 12가지의 문제점이 있다"면서 "민간인 박근혜 수사는 대선 이후로 연기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박 전 대통령의 '불복성' 발언에 대해서는 "피청구인이 어제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가셨기 때문에 이미 승복한 것"이라면서 "모두 헌재 결정에 동의하고 재판관들을 존경해야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헌법수호 의지가 없는것은 피청구인이 아닌 헌법재판관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전날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대기한 핵심 친박 의원들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박탈당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각자 역할을 나눠 보좌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총괄 업무를 맡고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이 정무, 김진태 의원이 법률, 박대출 의원이 수행 업무를 맡는 식이다. 탄핵 결정 이후 첫 메시지를 전달한 민경욱 의원은 대언론 창구 역할을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거주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외에서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 등 친박 단체들이 탄핵 반대 세력을 결집하며 '친박당' 부활에 군불을 뗐다.
이날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정당이 아니고서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서 "이게 우리의 혁명 정부가 될지 모른다"며 친박당 창당을 시사했다. 지난 11일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에서는 입당 서류를 쓰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고 지난 12일에도 탄기국 측은 '박사모' 카페를 통해 입당원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이미 지난달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새누리당(가칭)창당준비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중앙당 창당 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하고 '새누리당'을 당명으로 확보한 상태다. 오는 16일에는 친박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에서 '새누리당(가칭) 대구시당 창당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다만 대선을 불과 2달여 앞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창당과 대선후보 선출이 쉽지 않은 만큼 한국당을 통해 친박 후보를 내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로 복귀하자마자 친박세력이 적극적인 공세모드로 나서는 것은 폐족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친박 의원들은 야권은 물론 당내에서도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국민 마음에 걱정을 끼치고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언행을 한다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당도 불가피하게 단호한 조치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며 친박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재 판결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인 비대위원장 취임 당시 '친박 청산'으로 극한 대립을 겪은 강성 친박들은 이번에는 정치생명을 걸고 후퇴없는 일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과 '보수정당'을 놓고 경쟁중인 바른정당은 박 전 대통령의 헌재 결정
[안병준 기자 /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