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화물선에서 손을 내밀던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이 겹쳐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할 때였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그 때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마무리한 연설문을 통해 한·미 혈맹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거듭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선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췄다.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은 "3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그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당시 처절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문 대통령에게 기념배지를 선물했다. 옴스테드 중장이 언급한 별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장식하고 있는 '고토리의 별'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은 이날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며 흥남철수작전 당시 직접 촬영한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진을 문 대통령에게 선물로 건넸다. 문 대통령은 "제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라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이 이제 50분도 남지 않았다는데 부디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며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항해 도중인 12월24일, 미군들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 한 알씩을 나눠줬다고 한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늘 고마웠다"고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14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마친 뒤 짐도 풀지 않고 곧장 워싱턴 D.C.에서 60㎞ 가량 떨어진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것은 그만큼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가 문 대통령 일생의 중대 고비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행사는 당초 4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시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70분으로 늘어났다.
이날 연설로 문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미동맹에 대한 불신을 깨끗이 걷어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의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역대 정부 가운데 취임 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 속도를 내는 것은 자신의 개인사에서 드러나듯 한미관계가 단순한 동맹을 넘어서는 혈맹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기념사에서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며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인 고 문용형 씨는 함경남도 흥남에서 살다가 '흥남철수' 대열에 합류해 월남했다. 1951년 12월 23일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에서 출항했을 당시 피란민 1만 4000여명이 타고 있었고, 이들 중에 문 대통령 부모도 있었다.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인도주의 작전'으로 손꼽히는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장진호 전투'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국 해병 1사단이 약 12만명 규모의 중국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를 맞았다가 2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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