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으로 한국사회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각종 괴담과 음모설이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2일 메르스 때문에 자가격리 중인 서울의 50대 여성이 지방에서 골프 라운딩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로 다음날,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해당 여성을 둘러싼 출처 불명의 각종 설이 급속도로 퍼졌다. 급기야 불확실한 정보에 공포를 느낀 학부모들이 주변 학교에 휴교를 요청하는 민원을 대거 제기하면서 하루만에 대치동 인근 초등학교 3곳이 문을 닫게 됐다.
학부모들의 겉잡을 수 없는 공포에 놀란 대치동 일대 학원들마저 줄줄이 임시 휴원을 결정하는 등 SNS로 퍼진 ‘비이성적 공포’는 대치동 전역을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사회·심리 전문가들은 정부의 불투명한 정보공개와 미숙한 대응이 무분별한 괴담·음모론의 1차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시민사회가 이 같은 불확실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루머사회 먹잇감 된 ‘대치동’ = 지난 3일 오전, 메르스 때문에 서울 강남 자택에 격리 처분을 받았던 50대 여성 A씨가 지인 15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전북 고창까지 내려가 골프를 즐겼다는 소문이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통해 급속히 퍼졌다.
이날 오전 퍼진 루머에는 해당 여성과 남편, 자녀의 신상 정보가 매우 상세하게 적혀 있어 신빙성을 더했다. 예컨대 남편이 경기도의 한 병원 의사라는 것과 자녀는 인근 D고교에 다니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출처가 불확실한 정보임에도 해당 글을 받은 학부모들은 놀란 가슴으로 인근 D고교에 사실 관계를 묻는 전화를 걸어 D고교 측을 당황케 했다. D고교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지만 관련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무엇보다 우리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전했다.
메르스 공포는 A씨 집과 자녀뿐 아니라 아무런 관계가 없는 A씨 앞집까지 걸고 넘어졌다. 출처 불명의 또 다른 글에는 “골프 여성이 있는 집과 마주한 이웃집 자녀가 D초교에 다닌다”는 글이 나돌았다. 이에 D초교에도 학부모들의 융단폭격식 전화 문의가 쇄도했다. 학부모들의 거센 민원 전화에 놀란 D초교 측은 학부모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오후 시교육청에 임시휴교 결정을 통보해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학부모와 연계된 대치동 학원가 관계자들도 관련 SNS 글을 확인하고 서로 눈치를 보다 줄줄이 임시휴원을 결정하는 등 SNS발 메르스 공포는 대치동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국학원총연합회에 따르면 4일 오후 현재 휴원 상태인 대치동 학원들은 모두 16곳으로 강남구 전체로는 무려 39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회 관계자는 “솔직히 학원들이 과도하게 휴원을 결정해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게 아닌지 업계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며 “사실상 교육과 보육의 기능을 겸하는 초등학교와 학원 가동이 중단될 경우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상당한 비용 부담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4일 매일경제신문이 해당 루머글을 토대로 실제 S아파트 주민들을 탐문해 확인한 결과를 보더라도 당시 SNS 상에 떠돌던 골프 여성 관련 정보는 상당 부분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S아파트의 한 주민은 “나도 어제 SNS로 관련 글을 봤는데 직업, 나이, 학교는 모두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였다”며 “이들 부부는 격리 지침에 따라 현재 자택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도 “남편이 의사라고 거론이 됐던데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고 자녀도 고교생이 아닌 이미 결혼을 한 30~40대”라고 말했다.
이 주민은 “어제 돌았던 글이 100% 괴담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며 “잘못된 유언비어가 지역사회에 초래하는 불편과 사회적 비용이 어떤 것인지 이번에 제대로 실감하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3일 SNS에서 확산된 메르스 루머로 학교·학원가가 융단폭격을 맞은 대치동 일대는 하루가 지난 4일에도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다.
◆대치동 아노미, “한국사회 불편한 민낯” =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날 발생한 대치동 사례에 대해 “메르스 공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안한 민낯”이라고 일갈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비상사태에서는 생존과 직결되는 정보 입수에 열을 올리는 게 인간의 심리”라며 “전염병의 경우 내가 집을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가장 솔깃한 정보”라고 규정했다. 이어 “루머가 빠르게 퍼지는 건 당연지사인데 이 과정에서 사실 유무를 떠나 ‘소문내기’ 자체에 도취되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한 마리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니, 백 마리의 개가 따라 짖는다(一犬吠形 百犬吠聲)”는 중국 고전 ‘잠부론(潛夫論)’을 인용하며 각종 루머로 인한 사회적 위험성을 경고했다.
불안한 사회 심리를 틈타 실체가 없거나 과장된 루머를 퍼뜨릴 경우, 그 파급력은 한 마리의 개를 따라 짖는 마을 전체의 혼란스러운 모습처럼 빠르고 광범위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람들의 불신과 불안감을 먹고 자라나는 괴담과 루머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비단 이번 메르스 사태 뿐 아니라 정부가 국민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했을 때마다 어김 없이 루머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사건 역시 한국사회에 때아닌 루머를 뿌렸다. 당시 정부 당국이 “국산 수산물이나 오염해역과 관련없는 수산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일본 사람조차 안 먹는 생선을 우리가 수입해서 먹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이로 인해 상당수 횟집이 울며 겨자먹기로 고가의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SNS발 루머로 대치동 일대가 홍역을 치르면서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에 대해 엄단 의지를 밝혀왔던 경찰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경찰은 4일 현재 전국에서 접수된 14건의 유언비어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해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의 이나미 원장은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어느 시기가 되면 변형이 이고 전염력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며 현재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메르스 공포가 지나치게 과장됐음을 지적했
[김기철 기자 / 백상경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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