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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아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단어다. ‘성질이 차분하지 못하고 가벼워 실없이 수선을 부리다’란 뜻의 이 말은 사전적 의미와 달리 내게 무거운 육아 스트레스를 안겨줬다. 생후 100일이 채 안 된 아기에게 온갖 재롱을 피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서다.
어느 날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내게 친정 아버지가 한마디 툭 던지셨다. “새살을 떨어야 해”
분유를 먹일 때도, 목욕을 시킬때도, 기저귀를 갈아입히고 재울 때조차 나는 실수없이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칭얼대는 아기를 제 때 적절히 달래지 못했고, 결국 목청껏 울게 하기 일쑤였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조언을 한 것이었는데, 평소 실없이 수선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데다 애교와는 도무지 거리가 먼 나는 막막했다. 주변에서 혀짧은 소리 한마디만 해도 “어후 뭐야”라며 오버하지 말라고 지적하는 나인데 “우쭈쭈, 내 강아지” 콧소리 낼 생각을 하니 자가당착에 빠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주변 시선 역시 신경이 쓰였다. 능수능란한 엄마로 보이고 싶은데 아기 앞에서 우물쭈물, 우왕좌왕거리는 모습에 스스로 위축이 됐고, 입을 더욱 닫았다. 아기에게 무엇인가 더 반응을 하려고 하면, 말이 더 꼬이는 것을 어떡하란 말인가. 좋은 말, 예쁜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찰나찰나가 중요한 아기에게 반응하기에 내 순발력은 너무 부족했다. 출산 후 뭔가 확 변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던 나는 평소대로 조용조용히 육아를 했고, 새살떨기는 그렇게 멀어지는 듯했다.
아기가 태어난지 50일 무렵, 우리 가족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았다. 출산 후 첫 외출인 만큼 잔뜩 꾸미고 갔지만 10분도 채 안 돼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모른 채 아기가 울었기 때문이다.
사진관 영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난 우는 아기를 달래야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우는 아기를 안은 채 무릎을 굽혔다폈다하며 “으음~으응~괜찮아 괜찮아”라고 연신 속삭였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노래도 불렀다. 일명 ‘아에이오우 송(song)’이라고 간단하게 모음인 아에이오우만 무한 반복하면 되는 노래가 있는데 아기 귀에 대고 이를 불렀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한다는 심정으로.
효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비록 한껏 차려입은 정장은 땀에 다 젖었지만 엉엉 우는 아기를 달래는데 성공했다는 뿌듯함에 불편한 줄 몰랐다. 사진도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호로로롱 까꿍’, ‘아이 예뻐’, ‘우리 귀염둥이’ 등등 아기를 웃게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은 모두 다 튀어나왔다.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새살떨기가 한 순간에 다 됐던 것. ‘이런 모습이 내게 있었던가’란 놀라움과 함께 비로소 엄마가 됐다는 생각에 가슴 벅차오름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아기 앞에서 재롱떨기가 어려웠던 것은 내 체면부터 생각하고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엄마와 대화가 절실한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새살떨기는 절로 됐을 것이다. 사진관 이벤트 이후 엄마로서의 희생과 사랑으로 정신무장을 하자 남들 시선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아기와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까지 알게 되니 이게 웬걸, 출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아기 앞에서 불렀던 동요를 콧노래로 부르질 않나 친구나 후배들에게 ‘귀요미’라고 서슴없이 말하게 됐다.
수다쟁이 엄마가 똑똑한 아이를 만든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특히 하루 24시간을 거의 엄마와 붙어 있는 영아기에는 주양육자인 엄마가 말하고 들려주는 것이 아기의 뇌세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수다쟁이가 아닌 엄마에게 어서 빨리 수다쟁이가 되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로 인해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무리 아기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고 한들 진정한 교감은 이뤄질 수 없
등 떠밀려 하는 육아보다는 내 마음이 움직여 진정 아기를 생각할 때 새살떨기의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날로 업그레이드 되는 나의 재롱떨기만을 봐도 그렇다. 엄마라는 자격은 결코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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