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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연합뉴스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경주 불국사를 18세기 후반에 승려는 물론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 학문과 교육에 전념한 지방 유림이 함께 복원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료가 나왔습니다.
불교사를 전공한 남동신 서울대 교수는 최근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불국사복역공덕기'(佛國寺復役功德記) 탁본을 발견했다고 25일 말했습니다.
남 교수는 이 탁본이 1779년에 있었던 불국사 중창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거의 유일한 사료로, 1933년 7월 경성제대 도서관이 박준화 씨로부터 1엔에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덕기 탁본은 가로 139㎝, 세로 34.1㎝ 크기로 해서, 행서, 초서가 섞여 있으며 전체 50행이다. 불국사를 재건하는 과정, 글을 쓴 날짜와 사람, 비용을 낸 기관의 명칭과 금액 등이 기록됐습니다.
지은이는 조선 후기 경주에서 활동한 문인인 남경희(1748∼1812)로, 1777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기문을 찬술한 당시인 1779년에는 낙향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뒤 1791년 경주로 돌아와 안빈낙도의 삶을 산 것으로 전해집니다.
남경희는 공덕기에서 "교대(橋臺)는 황폐해지고 건물은 무너졌으며, 승려가 마침내 절을 떠나서 흩어진 지 여러 해가 되니 지나는 이가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중창 불사를 한 찬홍 스님이 "경상도 순찰사 이재간과 경주부윤 김상집 등이 자금을 출연하고 일꾼을 모아 재건을 도왔다"고 한 말을 소개했습니다
탁본의 내용을 분석한 남 교수는 "승려와 지방관, 유자(儒者)들 사이의 협력 관계가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면서 "이는 파괴된 사찰의 복원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회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에 지방 사찰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습니다.
남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을 미술자료 제88호에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