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의 진원지는 ‘빈부격차’다. 경제력의 차이로 인한 위화감과 불만이 극에 달하고 분노사회를 넘어 ‘원한사회’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이 사회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등 5명의 국내 대표적 정치·사회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지역·성별·연령·월소득 등을 기준으로 선발된 전국 성인남녀 105명을 심층 인터뷰한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불안·경쟁·피로 등 한국사회에 축적된 갈등이 포기와 단절·원한·반감 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경제력에 따른 계층간 갈등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사회적 격차에 대한 인식 조사를 위해 연구진이 이른바 ‘빽’에 물어본 결과, 남녀 구분 없이 응답자들은 개인의 사회적 성취에 빽이라는 요소가 강력한 후광효과를 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남성 응답자들은 “빽의 존재는 입사할 때 경험했다. 우리는 공채 입사했지만 빽있는 친구는 개별입사했다”, “사건 사고시 빽이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조그만 회사들은 로비 안하면 물건을 넣을 수 없다. 결국 빽이 돈이다” 등 일상적 경험을 소개했다.
빈부격차에 대한 질문에서는 “점점 심해져 중산층이 사라지고 상·하 계층만 남을 것이다”, “있는 사람은 계속 발전하고 없는 사람은 계속 쪼그라드는 구조” 등 극히 부정적인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다.
연구진은 방대한 심층면접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갈등 유형으로 ▲불안을 넘어선 강박 ▲경쟁을 넘어선 고투 ▲피로를 넘어선 탈진 ▲좌절을 넘어선 포기 ▲격차를 넘어선 단절 ▲불만을 넘어선 원한 ▲불신을 넘어선 반감 ▲갈등을 넘어선 단죄 등 8개로 분류했다. 학계와 언론이 불안과 경쟁·피로·좌절·불신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실제로는 단절·원한·반감·단죄의 감정 등 극단적 트라우마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사회의 불안 심리는 세계 보편적 현상이지만 외길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그 양상이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명예교수는 특히 “(젊은이들이) 이렇다할 성과가 기대되지 않음에도 생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모적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며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깊어지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이 어려워지면서 성공의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양극화한 계층구조에서 젊은세대는 물론 기성세대까지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총체적 불만이 한국 사회을 분노 이상의 원한사회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표> 김문조 명예교수 연구팀이 규정한 한국 사회의 8가지 갈등심화 유형
↑ 한국사회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한 105명의 답변을 토대로 구성한 워드크라우드. 사용빈도가 많은 단어일수록 글자가 확대돼 보이며 불신과 실망 등 부정적 키워드가 압도적으로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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