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엄마, 혹시 애 책 찢어서 혼내킨 적 있어요?”
“엇, 어떻게 아셨어요? 주말에 저랑 책 보는데 넘기기만 하면 책을 찢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귀신같이 내가 성호를 야단친 적이 있음을 알아챈 선생님은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셨다. 선생님과 책을 잘 보고 있던 성호가 책장을 넘기다 훅 한장 찢은 후 갑자기 ‘으응’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란다. 그러면서 스카치테이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빨리 책을 다시 붙여달라고 하는 성호 표정이 무척 주눅들어 보였다는 선생님의 말씀. 난 ‘아차차’ 싶었다.
그랬다. 지난 주말 사이 책장을 찢은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다그치며 안아달라는 아이를 뒷전으로 한 채 곧장 스카치테이프를 가져왔다. 찢어져 나간 종이 짝들을 맞추느라 정신없는 사이 아이는 급기야 ‘꽈당’ 넘어져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잠자던 아빠는 아이 넘어진 소리에 일어나 “아이는 달래지 않고 왜 굳이 책부터”라며 큰소리를 냈다.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 이 장면 그대로 아이에게 기억으로 남아 주눅든 표정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설마 한두번의 기억으로 성호가 그렇게 행동했을까 싶다가도 요즘 카메라로 착착 찍어내듯 엄마 아빠의 모든 행동을 따라하기에 또 가능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고 책읽는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들여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내게는 있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아이랑 놀 때면 책을 종종 펼쳐든다. 피곤하지만 평소보다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책을 읽어 주려고 노력한다. 낮 동안 같이 못 놀아준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커 말도 안되는 손발 동작을 섞어가며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책을 읽어준다.
하지만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은 거의 20초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본숭만숭하거나 오히려 책을 물고, 빨고, 찢고, 던지고 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발휘한다.
좌절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엄마가 이렇게 재미나게 읽어주는데, 왜 집중을 못하지?’, ‘우리 아이는 책을 싫어하나?’ ‘책을 안 읽으면 어쩌지?’ ‘누구네 집 아이는 벌써 책을 혼자 본다던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이내 불안감을 낳고, 불안감이 커질수록 난 아이를 붙잡고 책을 읽으려고 더 애를 쓴다.
결과적으로 책을 사이에 두고 난 아이와 사이가 벌어졌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책을 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릿 속이 하얘졌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에게 도대체 뭘 기대를 한거야!’ 자책했다.
한살이 채 안된 아기에게 탈무드, 논어 등 어려운 책을 읽어주는 게 결코 쓸데없는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잠재의식의 기능이 가장 활발한 시기를 이용하는 교육방법으로, 아기들의 두뇌 속에 그 내용들이 고스란히 저장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단순한 그림 책을 엄마의 육성을 통해 들으며 익히는 것은 이 시기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임이 틀림없다.
여기서 간과한 것 하나, 아무리 좋은 방법도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잊지 말아야할 진리이지만 종종 잊게 되는 부분이다(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까? 금방 또 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어쩌면 책장 찢기를 좋아하는 성호는 나름대로 책에 대한 친밀성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책 보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른 보다 50배나 많은 오감으로 책을 배워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것을 모르고 다그치기만 했던 엄마가 얼마나 야속하고 날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을지 생각하면 또 속상하다.
육아 전문가들은 책장을 찢는 아이에게 꾸지람 대신 박수를 쳐주라고 조언한다. 무엇이든 감각으로 배우려는 이 시기, 책 역시 감각으로 배워 보려는 시도로 이해하라는 의미에서다.
이런 방법도 있다. 책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면서 ‘호호’ 하고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기들은 곧장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며 안타까운 표정이 돼 책을 ‘호호’ 불어줄 수 있다. 아기들이 빠른 눈치로 책장을 찢으면 책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늘 하루 이렇게 또 배운다. 나의 시행착오가 내 자식의 시행착오로까지 이어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수시로 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배워 참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엄마로서 한발짝 떼본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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