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이 온라인에서 ‘이성간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매일경제가 올해초 ‘내부갈등에 무너지는 한국사회’를 주제로 한 시리즈 보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던 남성·여성혐오의 실태가 서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3월 7일자 A29면 보도
경찰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 보다는 피의자 김모(34·구속)씨의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묻지마 범죄’ 쪽으로 결론 냈지만, 불붙은 ‘남혐·여혐’ 논쟁이 확산되고 사건 예방을 위한 건설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 인근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처음에는 망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혐’, ‘여혐’ 을 주장하는 운동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곳은 이른바 ‘메갈리안(여성주의 사이트 회원)’과 ‘일베(극우성향 단체)’를 대표로 하는 성대결의 장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지난 21일에는 현장에서 한 여성과 ‘일베’ 회원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한국사회의 삐뚤어진 남성 중심주의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과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한다는 등 서로를 공격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전문가들은 사건의 원인을 무조건 ‘혐오’쪽로만 몰아가려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사회학)은 “성차별이나 성 역할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에서 누적된 불만과 갈등이 이성간 불만 불신을 넘어 증오에 가까운 적대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대립하는 양극단의 사고방식은 이성 타협과 화해를 어렵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혐오범죄’와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피의자 김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결과 범죄 원인이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한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이 피해망상이 원인이 되었고, 화장실에 들어온 여성을 보자마자 바로 공격하는 등 범행이 계획적이지 않았다는 점,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묻지마 범죄 중 정신질환 유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해 지난 19일~20일 김씨를 두 차례 심리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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