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잉 쉬이잉’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십여개 보안문을 통과한 후 도착한 공항터미널 지하 3층 수하물 처리장. 수십개 컨베이어벨트가 굉음을 내뿜으며 쉴새없이 돌아간다. 공산품 제조라인을 연상케하는 이 시설물은 보안구역인 공항 지하에 구비돼 있어 일반인 접근이 철저히 통제된다.
바로 이곳에 ‘공항의 심장’이라 불리는 수하물처리시스템(BHS)이 자리잡고 있다. BHS는 탐승객들의 수하물들을 여객기까지 재빠르게 운송해주는 컨베이어들이 복잡하게 설치돼 있는 일종의 공장이다. 공항 관계자는 “컨베이어들은 공항의 심장을 뛰게하는 동맥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의 BHS가 실어다 나르는 탑승객들의 수하물은 시간당 약 5만6000개. 공항 관계자는 “세계 각 공항별로 통계를 내지 않지 않아 공식 기록은 없지만 처리속도와 여객기 규모로 봤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물동량을 처리해야 만큼 BHS시설도 어마어마하다. 수하물을 항공기까지 운반해주는 벨트 컨베이어와 컨베이어를 구동하는 모터수만 각각 1만5000개에 달한다. 컨베이어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총 88km.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다. 세계적인 규모인 베이징, 두바이 공항보다도 더 길다.
총 4층 규모로 이뤄진 BHS의 연면적은 16만5000㎢. 축구장 24개의 넓이다. 담당 직원들조차 전기카트나 자전거 없이는 시설내부를 오가기 어려울 정도다.
BHS의 고속시스템은 체크인 카운터에서 2km 떨어진 탑승동(주로 외항사들이 계류해있는)까지 초당 7m 속도로 수하물을 운반한다. 덕분에 체크인후 26분이면 탑승동까지 옮겨진다.
단순한 컨베이어벨트 라인처럼 보이지만 사람 두뇌의 신경망처럼 촘촘한 IT기술로 중무장돼 있다. 수하물 꼬리표(tag)에 부착된 바코드를 읽는 83대의 자동판독기와 6만개의 자동 센서들은 수하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읽어내 해당 여객기까지 오차없이 자동 운반해 준다.
이날은 마침 인천국제공항의 누적 수하물 처리량이 지난 2001년 개항후 15년만에 5억개를 돌파한 기록적이 날이다. 수하물 5억개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11바퀴 돌수 있는 길이다.
공항 관계자는 “인천공항의 최첨단 BHS는 이제 전세계 주요 공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국의 히드로공항,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도 최근 공항 관계자들이 다녀가 인청공항의 BHS시스템을 현장조사 하고 갔다. 네덜란드의 스키폴 공항은 아예 6개월 교환근무를 통해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한때 위기도 있었다. 지난 1월3일 하루 최다 여객인 17만6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컨베이어 1~2개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며 수하물 탑재가 늦어져 160대 비행기가 지연 출발한 일명 ‘수하물 대란’사태였다. 사장 공백상태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이었다.
대란수습 총대는 한달 뒤 구원투수로 등판한 국토부 출신 정일영 사장이 멨다. 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100일간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총 43억원을 들여 BHS ‘두뇌’격인 전산서버와 1만5000여개 모터를 전량 교체했다. 정 사장은 등산화를 신고 출근해 매일 3~4시간씩 공항 지하에 있는 컨베이어를 직접 걸어다니며 현장 점검했다.
장애발생시 메뉴얼도 대폭 강화시키고 항공사, 조업사들과 시나리오별 비상훈련도 100회 이상 반복 실시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성과는 금새 나타났다. 지난해 2~10월 총 248개에 달했던 지각 수하물수가 올해는 같은 기간 70개로 72%나 줄었다. 지각수하물은 BHS의 일시적인 오류로 여객기에 제때 도착하지 않은 짐을 말한다. 100만개당 3개 꼴에 불과하다. 2014년
개선작업을 수행한 독일 지멘스사 라이너 보크트 매니저는 “인천공항은 다른 공항에 비해 특정 시간대 수하물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한게 특징”이라며 “이만한 물량을 단기간내 처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인천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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