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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에 대한 관심과 조명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허전쟁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서도 그랬고 4차 산업혁명과 미중 무역갈등에서도 지식재산의 중요성은 계속 부각됐다.
그 사이 주요 선진국은 지식재산을 통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백악관에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을 두어 지식재산을 일자리 창출과 국가발전의 핵심 원동력으로 삼았고, 중국 역시 시진핑 국가 주석을 중심으로 강한 지식재산권 창출 및 보호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일대일로 건설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오래 전인 고이즈미 총리 시절부터 지식재산입국을 기치로 걸고 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지식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해 운영해 왔다. 지난해에는 '가치 디자인 사회'를 지향하는 '지식재산 전략비전'을 발표했다. 이들 주요국의 공통점은 바로 지식재산 정책운영의 중심에 최고 정책결정자의 의지가 강하게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난 삼성 애플의 특허분쟁을 통해 얻은 교훈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당시 우리 정부도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법과 기구 설치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2011년 제정된 지식재산기본법을 근거로 야심차게 설립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8년이 지난 지금 그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 대통령 소속 기구이지만 정작 대통령의 관심 밖에 존재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는 지식재산기본법 시행령에 의거하여 공동 위원장인 국무총리가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총리실에 지식재산전략기획단을 두어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업무를 총괄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시행령이 개정되어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업무를 관장했다.
사무기구인 지식재산전략기획단도 총리실 산하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격하됐고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이다. 그것도 별도 기구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대통령 소속 위원회임에도 한 부처의 조직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15개 국무위원 부처와 9개 정부위원회 및 외청 등의 중앙행정기관이 소속된 대통령 소속 위원회임에도 대통령은 물론 공동위원장인 국무총리도 힘을 싣지 않는 명목상의 조직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식재산권 정책과 집행체계와 관련하여 대통령과 수상 등 국가 최고 지도자에 의한 확고한 거버넌스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선진국 미국과 주요 경쟁국인 일본, 중국 등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식재산 정책 추진에서 위원회는 뒷전이며 컨트롤타워 역할은 무색해졌다. 현재 지식재산 관련 정책은 특허 등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식물신품종과 지리적 표시, 유전자원 등으로 나뉘어 특허청과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이 주관한다.
이외에도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관련 지식재산에 대한 제각각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손발은 많지만, 머리가 없다. 그 결과 삼성 애플 사태 이후 우리의 지식재산 정책은 정확한 맥을 짚지 못하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식재산 정책 개혁의 중심에 대통령과 국회, 정당의 강력한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일본처럼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거나 미국처럼 청와대에 지식재산정책을 총괄하는 '지식재산정책집행관'을 신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지식재산위원회가 걸어온 길을 답습할 뿐이다.
지식재산 거버넌스의 변화와 맞물려 국가 RD 정책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RD 사업은 직접적인 예산 투입으로 기업과 연구소가 정부 예산을 나눠먹는 구조로 변질돼왔다. 이러한 실정에서는 경제성장을 견인할 기술의 고도화나 기술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주도의 중장기 RD 사업과 기업 등의 RD 사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부 주도의 중장기 RD 사업은 미션형 RD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해결과제를 선정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또 정부는 RD 사업을 통해 확보된 원천기술을 기업이 응용연구를 통해 산업화할 수 있도록 기반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 기업입장에서 연구개발을 통해 시장에 내놓은 상품이 모방 제품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연구개발의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튼실한 IP 제도를 구축하고, 지식재산권 전문가인 변리사 등의 전문인력을 적극 활용해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중장기 미션형 RD 정책 추진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와 든든한 IP 제도를 기반으로 수익 창출을 위한 기업의 활발한 RD 사업이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지식재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지식재산의 날(4일)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지식재산 정책과 국민들의 인식에 혁신의 바람이 불길 기대한다.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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