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가 특정돼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사흘이 지났습니다.
교도소에 복역 중인 용의자는 아직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죠. 그렇다 보니 이를 둘러싼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요. 사건을 취재 중인 이재호 기자와 이 내용 뉴스추적해보겠습니다.
【 질문 1 】
이 기자? 경찰이 뒤늦게라도 용의자를 찾아낸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용의자는 사건 현장과 그리 멀리 떨어져 살지도 않았다면서요?
【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 용의자는 화성시 진안리에서 태어나 30살이 넘을 때까지 한동네에서 살던 그야말로 화성 토박이었습니다.
3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용의자를 기억하는 주민이 있을 정도로 한 동네에서 학교도 다니고 일도 하고 그래 왔던 겁니다.
용의자를 어릴 때부터 봐온 마을 주민의 이야기입니다.
▶ 인터뷰 : 마을 주민
- "어쩌다 그랬는지 몰라. 국민학교 여기 다니고…. (중학교는?) 여기 안녕리."
특히나 용의자는 1980년대 후반 당시 화성군 안녕리의 한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통근로로 추정되는 경로에서 1차와 2차, 3차, 6차 사건이 발생했거든요.
왜 용의선상에서 비켜갔는지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
또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이 동선에 용의자가 다녔던 중학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꼬리를 잡히지 않으면서 범행을 이어갈 정도로 이 지역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도 보입니다.
【 질문 2 】
이 용의자가 결국 붙잡히게 된 건 1994년 청주 처제 살인 사건 때문 아닙니까? 청주 경찰이 직접 올라와 용의자의 화성 본가를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당시 화성연쇄살인 수사팀이 용의자와 마주치기도 했다고요?
【 기자 】
네. 그렇습니다. 당시 청주 경찰은 이 씨를 직접 데리고 화성에 있는 이 씨의 본가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당시 화성연쇄살인 사건 수사팀이 용의자를 눈앞에서 마주쳤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를 보고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는데요.
앞서 당시 수사팀장은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당시 용의자의 혈액형에 집착한 나머지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현재 수사본부 관계자는 수사 상황과 관련된 어떠한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 질문 3 】
용의자가 심각한 수준의 성도착증을 지녔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처제를 살해한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중에 당시 용의자의 부인이 진술한 내용이라면서요?
【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용의자는 1994년에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는데요. 당시 용의자의 부인이 남편의 폭력 성향과 성도착증이 심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용의자를 검거한 형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인데요.
경찰서에 진술하러 온 아내가 용의자의 성도착증을 호소하며 진술 내내 울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용의자는 옥중에 여성 음란물 사진을 소지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성적 욕망이 강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 질문 4 】
현재 3차 대면 조사까지 이뤄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주말에는 자료 분석을 하고 이제 본격적인 수싸움이 시작된다고요?
【 기자 】
네. 그렇습니다. 경찰은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여성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강호순의 입을 열게 했던 프로파일러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이를 포함해 모두 3명의 프로파일러가 용의자와 신뢰감을 쌓아가며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평균 4~5시간 정도 만나서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게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 질문 5 】
자백이라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어찌 됐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건 결국 DNA 증거인데, 이 DNA 분석기술이 최근 크게 발전한 건가요?
【 기자 】
네. 말씀하신 데로 33년 만에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바로 발전한 DNA 분석력입니다.
먼저 이번 용의자 DNA 검출에 성공한 강필원 국과수 법유전자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 인터뷰 : 강필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장
- "「DNA 양과 보존상태가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이번 감정물에서는 비교적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들으신 것처럼 30년이 지나도 증거물의 상태만 양호하다면 분석할 수 있다는 건데요.
DNA 분석 기법이 도입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결국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제로 넘어가던 지난 1992년입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분석실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유전자 분석이 시작됐고, 이후 기술이 빠르게 진전돼왔습니다.
특히 최근 8년간 DNA 분석을 통한 개인식별지수는 10의 9승 배, 즉 10억 배 수준으로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석 기법이 발달한 겁니다.
【 앵커멘트 】
화성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006년이었습니다.
경찰 연인원 205만명을 투입했지만 끝내 검거에 실패했구요,
3대 미제 사건이었지만 결국 첨단 과학수사로 범인은 잡혔습니다.
이제 완전범죄는 없습니다.
이재호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