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전주 봉동 숙소에서나 ACL 원정을 위해 해외에 나갔을 때나, 언제나 실내 웨이트 트레이닝에 가장 열심인 전북현대의 선수는 베테랑 수문장 최은성이다. 전북의 프런트나 선수들을 붙잡고 ‘누구냐’고 물었을 때 어렵지 않게 최은성이라는 세 글자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성실함이 불혹이 넘은 철인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최은성에 버금가는 성실맨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낯선 이름이 되돌아 왔다. 수비형미드필더 권경원. 1992년생으로 최은성과는 20살 이상이 차이가 나는 올 시즌 루키다. 갓 프로에 입문한 도전자다운 성실함이 될 성 부른 떡잎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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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땜빵’ 요원으로 시작한 권경원의 등장을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츰 경기 출전시간과 횟수가 늘어나면서 출중한 신체조건 이상의 잠재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랬던 권경원은 이제 단순한 대타가 아니라 든든한 백업이 됐고, 나아가 김정우 정혁의 경쟁자이자 전북 미드필더의 내일이 되는 분위기다.
철저한 무명이다. 올 시즌 신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프로에 입단하는 어지간한 선수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청소년 시절 연령별 대표팀 경력도 없다. 축구는 너무 좋아하는데 영 빛이 보이지 않던 중학교 졸업 무렵, 권경원의 부모조차 “축구선수가 아닌 축구심판으로 진로를 바꾸자” 했을 정도로 썩 전망이 좋지 않았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의지가 재능을 만들어냈다.
권경원은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브라질 축구유학을 떠났다. 1년 단기 유학이었다. 실상 이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사막에 꽃이 피었다. 170cm가 채 되지 않던 권경원은 180cm를 훌쩍 넘도록 컸다. 불과 1년 사이 엄청난 신체의 변화와 함께 실력의 변화도 함께 찾아왔다.
어쩌면 이것도 운이었다. 키가 쑥쑥 크는 그 기간 마침 브라질의 자연스러운 기술을 접목시키면서 밸런스가 맞아 떨어졌다. 현재 190cm(공식 189cm)에 육박하는 권경원이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키핑력과 드리블 능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 브라질에서의 ‘기적 같은 1년’에 있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전북 유스팀인 영생고에 입학한 권경원은 중앙수비와 수비형미드필드로서의 자질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2010년 동아대 입단, 2013년 전북현대 입단으로 프로선수가 되는 감격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지난겨울 팀이 브라질 전지훈련을 떠날 때 멤버에 속했던 권경원은 그 자체만으로 꿈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스스로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함께 녹색 유니폼을 입은 신입 동기들 중에서도 권경원은 최고 우량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장 쑥쑥 크고 있는 떡잎이다.
같은 포지션의 기성용을 연상케 하는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일단 크다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빈번한 프로의 세계에서 분명 축복받은 케이스다. 넓은 시야와 그 시야를 통한 정확한 패스를 가능케 하는 킥 능력 역시 기성용처럼 발군이다. 지난 22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ACL 16강 2차전에서 아깝게 포스트를 때렸던 중거리슈팅을 보며 혀를 내둘렀던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것은, 공을 손쉽게 찬다는 것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괜스레 공을 끄는 법이 없으며 화려하게 멋을 부리지도 않는다. 깔끔하다. 권경원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것은 이런 간결하고 깔끔한 기본기를 갖췄기 때문이다.
6월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부산과의 경기에 권경원은 선발로 출전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동국 이승기 정인환 등이 대표팀에 차출됐고 김정우 정혁 서상민은 부
권경원으로서는 또 기회다. 더 이상 땜빵이 아닌 당당한 보유자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아직은 권경원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이름을 꼭 기억해야할 요소들이 많은 루키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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