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흙먼지 위에서 뒹굴까.
뜬금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요즘 프로야구판을 보면 이 기본적인 명제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어서다.
결론부터 말해 야구선수, 아니 프로선수는 돈을 위해 뛴다. 돈은 무엇인가. 부를 얻는 동시에 좋은 성적을 내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따라 온다.
거기에는 뼈를 깎는 자기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시절 선수의 가장 큰 행복은 국가대표선수 선발과 출전이었다. 하지만 프로로 전환되고 시대가 바뀌면서 선수들의 기준도 바뀌었다. 프로에서 선수의 가치는 연봉으로 나타난다. 최고의 자리는 요원하고,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연봉이 명예의 척도이자 가치로 나타난다. 프로의 체계가 잡히기 전 80년대와 90년대초 선수들은 좋은 성적, 경기에서 이기는 것, 팀 승리와 나아가 우승에 대한 성취감이 삶의 최대 목표였다. 아마추어정신이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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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운동선수는 연예인 못지않은 사회적인 인기와 지위를 누리고 있다. 명예는 추상적이지 않고 객관적인 지표이기도 하다. 팬들의 사랑은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때만 존재한다. 늘 벤치와 2군에서 머무는 선수에게 관심이 쏟아지지 않는다. 선수는 그것을 경기장에서, 자신의 몸값으로서 증명하는 것이다. 최근 이승엽에게 쏟아지는 변함없는 관심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승엽 스스로 긴 시간 동안 정상의 위치에서 증명했던 것들이 오랜 기간 팬들의 사랑으로 드러난 것이다.
최근 야구선수들의 잇따른 사건 사고와 관련해서 그들이 공인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많다. 단언컨대 프로야구선수들은 공인이다. 과거에도 역시 비슷한 연예인들의 사건 사고의 사례에서 더 많은 공인의 기준을 강요했던 시절이 있지만 현재는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의 공인은 바뀌었다. 공인의 현재 모습을 감안하면 선수들 스스로 더 투철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선수의 행복은 어떤 팀을 만나느냐도 중요하다. 자신과 궁합이 맞고 신뢰를 보내주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팬들을 만나는지도 중요하다.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많은 연봉(15억원)을 받는 김태균의 경우가 그렇다. 선수 개인으로서는 가장 행복해야하지만 실제 그런 지는 모르겠다. 팬들은 선수 스스로 연봉에 걸맞은 활약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점은 팀의 사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김태균이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화라는 팀에 있어서 손해를 보고 있는 부분도 많다. 단적으로 배영수의 경우에는 삼성이라는 팀을 만나 상승 작용이 생긴 경우다. 둘 간의 궁합이 잘 맞는 경우다. 삼성 유니폼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배영수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돈'만이 프로선수의 '행복'을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셈이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으로 인도할까.
부상 방지와 자기 관리다. 성적을 올리면서 롱런할 수 있는 전제는 부상이 없는 것이다. 선수들 개인의 기술적인 신체적인 차이는 있지만 모두는 똑같은 기준선에서 출발한다. 그때부터 스스로의 관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스프링캠프부터 시작해서 1년간의 시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내는가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24시간 동안 늘 야구에 집중할 수 없다. 선수들 스스로 슬럼프와 딜레마에 빠졌을 때는 야구를 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나 영화 감상, 음악 감상, 낚시, 바둑 등의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 내면을 채워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운동선수들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을 돕는 구조적인 도움이 부족하다. 해외에는 스포츠 심리닥터들이 팀에 존재한다. 한국에도 다양한 팀들이 그런 인력을 두고 있지만 외부의 지원 정도다. 심리상담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꺼리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보다 전문적인 조언하에 허심탄회하게 심리를 풀어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선수들은 육체적인 부상에 빠지기 쉽다. 동시에 슬럼프를 겪게 된다. 그 시간을 짧게 줄이는 것이 좋은 선수의 조건이고 그것은 역시 심리적인 안정이 기본 배경이다. 행복한 삶이 더 행복한 선수생활을 길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프런트 스스로 선수와 구단의 명예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명문을 꼽으라고 하면 어느 한 팀을 쉽게 꼽기 힘들다. 미국의 뉴욕 양키스나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와 같은 전통의 명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야구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거듭났지만 아직 그만큼의 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구단들이 명문구단으로서 스스로의 색깔을 더 뚜렷하게 낼 때 선수들도 그에 걸맞은 명문구단 소속 선수로서의 자부심과 행복을 갖게 된다.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전제다. 동시에 100% 전문성을 띤 구단 관계자들이 구단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메이저리그의 단장보좌역과 같은 직책이 대표적이다. 단장보좌역은 은퇴 선수로서 현장의 선수들과 구단의 운영을 아우를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양 측의 입장을 대변해 진정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책임을 갖고 선수의 행복과 구단의 가치를 설계하는 구조적인 노력에 앞장서야 할 필요가 있다.”
[전 LG·삼성 투수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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