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상암) 임성일 기자] FC서울은 올 시즌부터 2층 관중석을 자신들을 상장하는 색깔인 검정과 붉은색 천으로 가려놓고 있다. 좌석 수를 줄인 것이다. 6만5천석을 훌쩍 넘는 대형 월드컵경기장의 규모로 인해 어지간한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도 휑한 느낌만 주는 폐단을 막는 동시에, 경기를 선택한 팬(선택된 팬)들에게만 FC서울의 경기를 보여주자는 배에 힘을 준 의도였다.
2층 좌석을 빼면 입장할 수 있는 좌석은 4만석 정도로 크게 줄어든다. 물론, 줄였다고 한들 K리그의 여건상 만석을 기대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런데 3일 오후, FC서울 구단은 본부석 맞은 편 2층 상단의 통천을 걷었다. 걷어낸 자리에는 축구팬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1층은 말할 것도 없었다. 4만3,681명의 구름관중이 모였다. FC서울과 수원삼성, 수원과 서울의 이른바 ‘슈퍼매치’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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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슈퍼매치다웠다. 2층 통천까지 걷어낸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득 찼다. 이 경기를 선택한 팬들은 결국 선택된 팬들이 됐다. 사진(상암)= 김영구 기자 |
4면으로 둘러싸인 관중석은 정확하게 구분됐다. 3/4는 홈팀 FC서울을 응원하는 팬들의 붉은 물결로 넘쳤고, 본부석 오른쪽 원정응원단 자리는 수원의 푸른 함성이 수놓았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근래에는 A매치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열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경기장 자체를 들었다 놨다 만들던 어마어마한 함성은, 현장에 함께 했던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었다.
한 경기장에서 공수의 전환 때마다 명확한 환호와 탄성이 엇갈렸다는 것도 이색적인 그림이었다. 실상 국가대항전은, 한국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기에 한국이 공격을 할 때와 수비를 할 때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실상 K리그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팀을 따라 원정을 함께 하는 응원단의 규모란 소수정예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방적’이란 느낌은 K리그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홈팀 응원단의 규모가 대단치 않은 K리그 클럽도 적잖다. 그러나 3일 상암벌은 달랐다.
홈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다수였기에 서울이 공을 잡으면 A매치의 느낌을 전달했다. 하지만 함성소리는 공격권을 수원이 가졌을 때도 줄지 않았다. 수원에서 올라온 원정팬들의 응원소리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거리상 서울과 수원이 그리 멀지 않다는 영향이 있으나 이는 분명 라이벌전의 힘이다. 덕분에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는 90분 내내 들끓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가진 것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다 짜냈다. 왜 서포팅이 보이지 않는 힘을 끌어내는지,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공기가 보여줬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팬들도 최선을 다했다. 자랑스러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선수들의 힘만으로 가능했던 그림이 아니다. 외려 팬들의 몫이 더 컸다 해도 과언 아니다.
이런 곳에서 뛸 수 있따는 것은 서울 선수들과 수원 선수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축복이다. 그리고 이날 경기장을 찾은 4만, 팬들도 축복 받은 K리그 팬들이었다. 이 경기를 선택한 팬들은, 선택된 팬들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기가 있다’ 자랑할 만한 K리그 경기를 본 것은 상암벌에 모인 팬들 뿐이었다.
FC서울이 지긋지긋한 라이벌전 악연을 끊고 2-1 승리를 거뒀으니 상암벌은 더더욱 뜨거웠다. 서울 팬들은 원 없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수원의 팬
지상파는 물론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도 이 뜨겁던 ‘슈퍼매치’를 외면했다. 아쉬운 마음을 풀어 놓지는 않겠다. 이 경기를 선택한 팬들은 현명했다. 덕분에 그들은 선택된 팬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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