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괌) 김원익 기자] “그래도 펑고는 내가 쳐야죠. 허리가 아파서 오늘도 이정밖에 못 쳤지(웃음).”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괌 캠프서 직접 배트를 잡았다.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어 주변은 만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우승감독의 나태함은 없다. 캠프의 집중도와 선수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통합 4연패 달성한 삼성 선수단은 15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해 16일 괌에 입국, 숙소인 레오팔레스 리조트 내 경기장서 본격적인 캠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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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17일 괌 레오팔레스 리조트 경기장에서 열린 1차 캠프서 직접 내야 펑고를 치고 있다. 사진(괌)=김원익 기자 |
이후 몸풀기와 런닝, 롱토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내야와 외야로 나뉘어 펑고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야에는 류 감독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류 감독은 수비 코치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는 ‘지옥의 펑고’로 유명했다. 훈련의 강도가 선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날도 류 감독은 날카로우면서 처리하기 까다로운 타구를 수차례 날리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김용국 수비코치와 함께 매서운 눈빛으로 꼼꼼하게 기본기, 사전-연속 동작을 지휘하며 내야수들을 지도했다.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 류 감독의 얼굴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다.
감독들이 직접 펑고를 치는 경우는 잦지 않다. 보통 일반적으로 코치들의 몫이다. 약 30분 동안 펑고를 친 류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몸도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다소 찡그린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온 류 감독은 이내 표정을 바꿔 미소로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진지함 가운데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캠프를 지휘하던 예년의 류 감독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통증 때문이었다. 류 감독은 “사실 얼마 전 코칭스태프들과 워크숍을 겸해서 골프대회를 했는데 거기서 허리를 삐끗했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코치들과 함께 한 자리. 추운 날씨에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다보니 무리가 갔다. 류 감독은 “처음에는 약간 삐끗한 정도였는데 이후에 통증이 심해졌다. 지금도 펑고를 치니까 허리에 통증이 온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코치들은 류 감독이 펑고를 치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류 감독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펑고는 허리가 좀 나을 때까지 쉬라는 취재진의 권유에도 손사래를 치더니 “그래도 내가 쳐야 한다. 허리가 아파서 오늘도 이정도 밖에 못쳤다. 어쩔 수 없이 팔로만 스윙을 했다”며 미소를 짓더니 “약속은 지켜야지”라며 불쑥 내심을 털어놨다.
시즌 중 1년에 펑고를 치는 일이 잦지 않은 류 감독이 항상 펑고를 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스프링캠프다. 류 감독은 앞서 “스프링캠프서만큼은 내가 직접 펑고를 치고 싶다. 선수들의 몸 상태나 준비 상황을 바로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캠프에서는 내가 펑고를 치겠다”며 스스로의 약속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이것을 지키기 위한 것.
수장이 직접 펑고를 치는 효과 또한 남다르다. 긴장도와 집중도는 당연히 더 올라가기 마련이다. 특히 류 감독처럼 명유격수 출신의 기본기를 중시하는 지도자가 직접 지휘하는 훈련인만큼 선수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공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4년째 통합우승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라면 자칫 태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시즌도 류 감독에게는 그리 편한 시기가 아니었다. ‘비시즌동안 잘 쉬셨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류 감독은 “이번시즌 생각하면서 또 머릿속이 복잡하고 그랬다. 아마 우승을 한 감독이 아니더라도 감독들이
“감독은 늘 다음을 생각해야 되는 자리고 성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밖에서 보는 전력과 평가는 어떨지 몰라도 내 생각은 늘 다르다. 직접 하나하나 다 지켜보고 만들고 꾸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이 보이고 선수단에 부족한 것들이 보인다. 이게 감독의 업인가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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