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시즌 첫 선발승이요? 사실 억지로 웃어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올 시즌 우여곡절 끝에 첫 선발승을 거둔 투수 임정우(24·LG 트윈스)의 다음날(25일) 표정은 어두웠다. 경기 전부터 내린 비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서글픔까지 느껴졌다. 그는 왜 웃지 못하고 있었을까.
임정우는 지난 24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5이닝 동안 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2실점 호투로 선발승을 따냈다. 올 시즌 10번째 선발 등판 만에 거둔 값진 1승이었다. 지난 18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해 5⅓이닝 무실점 경기를 했던 임정우였기 때문에 선발투수로서 자부심도 생길만 했다.
↑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LG 트윈스 투수 임정우. 사진=MK스포츠 DB |
임정우는 올 시즌 20경기에 등판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선발 등판, 절반이 구원 등판이었다. 성적은 2승5패 평균자책점 5.20을 기록했다. 선발도 아니고 불펜 투수도 아닌 애매한 보직이다. 팀이 필요할 때면 보직을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마운드에 섰다.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임정우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주 보직은 롱릴리프였지만, 팀이 필요하면 선발 등판도 가리지 않았다. 승리조 셋업맨으로 나서기도 했고, 패전 처리를 위한 불펜 요원으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2011년 SK 와이번스로 입단해 이듬해 LG 유니폼을 입은 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임정우가 서글픈 첫 번째 이유는 정체성이다. “솔직히 선발승을 했다고 해서 대단히 기쁘지 않다. 그냥 1승을 한 것과 다른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올해는 열심히 던져도 경기 운도 계속 없고…. 내가 선발투수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임정우는 선발투수로 시즌을 준비한 적이 없다. 스프링캠프에서 투구수를 늘려 훈련을 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그에게 “넌 선발투수로 쓸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올해도 시즌 개막 직전 선발 등판 통보를 받은 뒤 마운드로 걸어 나갔을 뿐이다. 그렇다고 선발 로테이션 합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올해 LG의 선발 구상에는 임정우가 없었다. 두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와 루카스 하렐, 복귀를 앞둔 류제국과 우규민이 4선발을 확정한 상태에서 신인 투수 임지섭이 5선발 후보였다. 임정우는 장진용과 함께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선발 공백을 메우는 ‘땜빵선발’이었다. ‘미래의 선발’일 수는 있지만, 현재는 아니었다.
“최근 3년간 계속 그랬다. 내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선발로 던지다 불펜으로 나가면 고작 1이닝이니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힘들다. 준비하는 것도, 타자를 상대하는 것도,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것도 다르다.”
임정우가 괴로운 것은 기회의 시간이다. 내년 시즌을 마친 뒤 군 입대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해놓은 것이 없다. 팀의 궂은일을 도맡으며 어느새 프로 5년차. 임정우의 통산 성적은 109경기 등판 7승13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4.79로 기록적 수치는 초라하기만 하다.
정체성에 흔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확실한 내 보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차라리 불펜에서 계속 던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줄 수 있다. 선발이 부담이 되거나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선발로 던지면서 구위가 떨어질 때 느끼는 그런 한계 때문이다.”
임정우가 느끼는 선발로서의 한계는 체력이다. 쉽게 말하면 한계 투구수다. 양상문 감독이 “힘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그것이다. 임정우는 스스로 한계 투구수를 알고 있다. “최대 80개를 던지면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선발투수로 몸을 만들고 준비를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도 선발로 나서는 투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싸워야 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양상문 감독은 의도성을 떠나 임정우를 실전에서 선발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양 감독은 “임정우가 선발 부담이 없어진 건 분명하다. 제구도 많이 좋아졌다”며 “변화구가 많은 것이 장점인데 경기 때 활용을 잘 못했다. 선발로 나서면서 장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임정우에게는 얼마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언제든 다시 불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마운드에서는 더 그렇다. “일부러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 웃으면 웃는다고, 웃지 않으면 싸가지가 없다고 욕을 많이 먹더라. 그래서 무표정이 습관이 됐다.”
임정우는 선발도 좋고 불펜도 좋다. 단지 정체성을 빨리 찾고 싶을 뿐이다. 그때 비로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선발로 가기 위한 성장통일까. 지금은 서글픈 임정우다.
↑ 올 시즌 첫 선발승을 거둔 임정우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사진=MK스포츠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