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윤진만 기자] “이라크에 온전한 평화가 깃드는 날, 전 세계가 긴장해야 할 것이다.”
축구 기고가 사이먼 쿠퍼와 스포츠 경제학 교수 스테판 지만스키는 축구를 경제학으로 풀어낸 공동 저서 <사커노믹스(2010)>에서 세상에서 가장 매운 ‘작은 고추’로 이라크 대표팀을 지목했다. 사담 후세인으로 대표하는 독재 정권 체제, 이란과의 전쟁, 곤궁한 나라 살림살이와 같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선전 중이기 때문이라 했다.
두 전문가가 1980~2001년을 기준으로 집계한 인구, 경제력, 경험 대비 성적이 좋은 국가대표팀 순위에서 이라크(선전도 88.2%)는 온두라스(선전도 97.8%)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승률은 무려 69.2%로 같은 기간 전 세계 국가대표팀 중 브라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은 5위의 기록이다.
이라크는 이 기간 축구 강국과 경기한 적이 거의 없이 아시아 국가와만 대전했다. 이 때문에 승률을 객관적 지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계에서 5번째로 축구 실력이 뛰어난 국가는 아니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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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대표팀 별명은 메소포타미아의 사자이다. 이라크와 한국 대결은 곧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이다. 사진(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AFPBBNews=News1 |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당시의 이라크는 폭행과 고문이 공연히 행해지는 후세인 독재 체제였다. 장남 우다이 후세인은 국가 대항전에서 패하면 일부 대표 선수를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잘 먹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받는 환경에서도 그들은 꾸준히 승리했다.
이라크는 월드컵, 올림픽(3회)에 출전했고, 1982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 사담과 우다이의 몰락 이후인 2007년에는 아시안컵을 들며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축구를 주제로 ‘팝아트’ 작업을 하는 이라크인 예술가 후시파 자흐는 “선수들이 두려움 없이 경기한다. 마음이 편한데 잘 뛸 리가 없지 않겠나”라고 <사커노믹스>를 통해 말했다.
90년대 주춤하다 2000년대 들어 다시 오른 기세는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까지 찔렀다. 2003년 12월 후세인이 체포된 이후 올림픽팀은 3전 2승 1패, 청소년 팀은 1승 3무 1패로 대등하거나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냈다. 2007년에는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고, 2015년 아시안컵에선 준결승전에서 한국에 패했지만, 8강에선 일본에 충격을 안겼다. 20세 동생들은 2013년 U-20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다.
<사커노믹스>가 예견한 대로 이라크의 월드컵 우승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이라크는 앞으로도 일본, 호주, 이란과 더불어 한국을 괴롭힐 가능성이 큰 나라인 건 분명하다. 대표 선수들은 이탈리아, 터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포르투갈, 호주, 미국 등지에서 경험과 실력을 동시에 쌓고 있다. 20~3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구 할 맛 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이라크의 축구 성장을 이끄는 배경이다.
내년 1월 올림픽 진출권이 걸린 2016AFCU-23챔피언십에서, 한국 올림픽팀이 조별리그 상대 중 가장 주의해야 할 팀은 바로 이 이라크일 것이다. 후세인 체제 전후로 객관적 전력을 뛰어넘는 깜짝 성과를 냈고, 다른 여타 중동 국가와는 달리 플레이에 집요한 구석도 있다.
<사커노믹스>는 이렇게 적었다. “인구 대비 축구에 대한 열정과 스포츠(축구 포함) 실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는 노르웨이다. 자원의 열세에 비해 놀라울 만큼 축구를 잘하는 나라는 (구)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체코다. 그런데 그 밖의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단연 눈에 띄는 나라는 이라크다. 이라크에 온전한 평화가 깃드는 날, 전 세계가 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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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커노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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