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日 도쿄) 이상철 기자] 통쾌한 도쿄 대첩이 펼쳐졌던 지난 19일, 김인식 감독의 승부사 기질은 또 한 번 적중했다. 8회까지 완벽하게 밀렸던 경기를 9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뒤집었다. 믿기지 않는 그 승부에 한일 야구팬은 놀랬다. 단, 그 뒤의 감정이 서로 달랐을 따름이다.
그런 김 감독이 가장 고심했던 순간이 있다. 기적의 9회, 그 출발점이다. 한국은 대타 카드를 연달아 꺼냈다. 고민은 오재원(두산)과 손아섭(롯데), 둘 중 누구를 먼저 내보낼까 였다. 대타는 막힌 혈을 뚫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다. 경기 전부터 김 감독은 대타의 활용성 및 사명감에 대해 강조했다. 그만큼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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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아섭은 지난 19일 프리미어12 준결승 일본전에서 9회 대타로 출전해 중전안타를 치고 기적 같은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8회까지 콱 막혔다. 김 감독은 9회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아낄 수밖에 없던 대타 카드를 꺼냈다. ‘확률 높은’ 두 장이 있었다. 오재원과 손아섭을 저울질 하다가 오재원을 먼저 내세웠다. 이 판단은 적중해, 오재원에 이어 손아섭까지 연속 안타. 그리고 이 2명이 뚫은 활로에 불씨를 던져 ‘딱 필요한’ 4점을 얻었다. 오재원과 손아섭은 잇달아 득점까지 성공.
김 감독은 “솔직히 대타를 투입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오재원이 출루하면, 손아섭도 함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하나의 작전이었다. 그게 주효했다”라고 밝혔다. 결승타는 이대호(소프트뱅크)가 쳤으나 그 역전의 발판을 만든 두 대타의 공을 잊지 않았다.
‘대타 손아섭’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김 감독은 경기 전 공개적으로 손아섭을 대타로 쓸 복안을 알렸다. 언젠가는 투입될 손아섭이었다. 그러나 답답한 경기 흐름 속에 뛸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한 번 뚫어보겠다’라고 자신할 수도 있겠으나,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 부담감은 점점 더욱 커졌을 터다.
주전 우익수였던 손아섭은 프리미어12를 치르면서 민병헌(두산)에 자리를 내줬다. 되찾고 싶을 터. 뭔가 보여주고 싶은 ‘영웅 의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아섭은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어깨에 힘도 뺐다. 대타로서 주어질 그 기회를 기다렸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찾아올 그 기회를.
결승으로 가는 길목이다. 게다가 상대는 일본이다. 갚아야 할 빚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심’에 얽매이지 않았다. 손아섭에겐 그저 ‘우승을 위해’ 이겨야 할 ‘똑같은’ 상대일 뿐이다. 손아섭은 “오직 우승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준결승이다. 우승으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할 하나의 장애물일 뿐이다. 특별히 일본이라고 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진 않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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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아섭(왼쪽)은 지난 19일 프리미어12 준결승 일본전에서 9회 대타로 출전해 중전안타를 치고 기적 같은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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