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삼성 라이온즈의 제일기획 이관 이후 급격한 변화와 개혁에 대한 후유증이 크다. 실망한 팬心과 구단이 추구하는 이상(理想)간의 괴리다.
삼성의 스토브리그 행보에 대해 팬들이 느끼는 실망감의 수준이 상당하다. 특히 오랫동안 삼성의 주축선수로 활약했던 박석민(NC)의 FA 이탈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후속 외인 투수 영입까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거기에 역대 최고수준의 외인타자였던 야마이코 나바로와의 결별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팬심은 들끓었다.
삼성이 제일기획 이관 이후 내세운 효율적인 ‘기업’의 방향성과 팬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애정이 충돌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기에 주축 선수들의 도박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생채기가 난 마음에 쓰린 상처가 덧났다. ‘최고’만을 당연시 여겼던 삼성 팬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개혁의 이상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11일 제일기획은 삼성 라이온즈의 이관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 소속의 모든 프로스포츠단을 제일기획이 통합 관리 운영하게 됐음을 밝힌 것. 그러면서 제일기획은 향후 구단의 운영의 방안이 ‘기업’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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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이코 나바로를 잃은 삼성 팬들의 상심이 커지고 있다. 개혁을 추구하는 구단의 이상간의 괴리도 생겨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러면서 “최근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구단들은 과거 승패만을 중요시했던 ‘스포츠단’에서 체계적인 마케팅 전략과 팬 서비스를 통해 수입을 창출해내는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향후 생산적인 수익구조 마련에 더욱 힘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일기획의 움직임은 분명 의미가 있다. 국내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지만, 아직 자생적인 자립구조는 매우 약하다. 모기업들이 수백업원의 돈을 매년 운영비로 그야말로 쏟아 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야구단이라는 독자 법인이 자체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 결국 그 뿌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일기획이 급격하게 시도하고 있는 변화는 또 다른 현실과 부딪힌다. 효율을 강조하면서 운영비를 감축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나머지 9개 구단이 보여주고 있는 현재 모습과 삼성의 길이 너무나 다른 것. 당장의 전력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삼성은 19일 앨런 웹스터(25)와는 총액 85만 달러에, 콜린 벨레스터(29)와는 총액 50만 달러에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들 2명의 몸값 총액 135만달러는 한화 이글스가 잔류시킨 에스밀 로저스(29) 1명의 몸값 19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웹스터와 벨레스터의 성공가능성은 알 수 없지만 당장 ‘헐값 논란’이 나온다. 그간 외국인 투자에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삼성이다. 너무나 급변한 행보. 효율을 중시한 결정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설상가상. 나바로의 이탈은 결정적이었다. 나바로는 지난 시즌 140경기서 타율 2할8푼7리 48홈런 126득점 137타점 22도루(6실패)라는 외인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역대 2루수 최다 홈런 기록과 외인 역대 최다홈런 기록까지 모두 새롭게 썼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인 타자인 동시에 KBO리그 역대 외인을 통틀어서 최고 수준의 타자.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선수다.
나바로의 계약 불발에는 ‘돈’과 ‘성실성’이 얽혀 있다. 일본 구단 지바롯데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나바로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삼성은 계약서에 ‘성실성 조항’을 넣길 원했다. 협상의 온도는 그리 훈훈하지 않았다.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바로가 삼성의 조건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도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나바로는 지바롯데와 협상 마무리 단계에 돌입, 삼성의 최종통보에 응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바로를 이끌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 구단들의 자금력을 고려하면 결국은 제시 조건의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성실성’ 조항 또한 삼성이 나바로를 내년 포용하기 위해 넣었던 제시안에 포함된 것이었다. ‘조항’에 대한 부담감이 컸더라도 결국 ‘조건’이 맞았다면 나바로가 어디를 택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팬들은 드러난 결과만을 믿는다. 결국 나바로는 떠났고, 삼성은 최고의 타자를 잃었다.
나바로가 성실성에 문제가 있었던 선수인 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땅볼을 치고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것은 아주 기초단계의 레벨에서 배우는 야구의 기본이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최선을 한다는 기본 약속이기도 하다. 단체 운동인 야구의 팀워크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와 벤치의 모든 후보 선수, 코칭스태프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이런 나바로의 모습을 두고 수많은 야구인들이 질타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야구팬들 또한 수없이 많이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장면이다. 동시에 나바로가 불성실한 태도와 잦은 지각 등으로 선수단에서 위화감을 조성했던 것도 수많은 야구 관계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그런 진실조차 팬들은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바로는 분명 최고의 성적을 올린 선수였다. 그리고 삼성이 나바로를 잡지 못한 것의 인과관계가 ‘성실성’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 ‘효율성’의 행보가 ‘스포츠단’으로 삼성이 야구계서 지켜왔던 ‘자부심’을 위협하는 것으로 느껴질만한 정황들의 연속이다. 겨울 추운 행보에 팬들의 마음도 얼어붙었다.
야구팬들은 승리를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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