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서프라이즈) 이상철 기자] 넥센 히어로즈는 색깔이 달라졌다. 공격적인 야구는 유지하나 방법(파워→스피드)이 바뀌었다. 또한, 다이어트 프로젝트도 세웠다. 일단 딱 100실점만 줄이기다. 이를 위해 어느 때보다 스프링캠프에서 기본기를 다지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베이스러닝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수비는 더욱 안정적으로 하고.
1점을 내줘도 2,3점을 뽑아 뒤집었던 넥센은 1점을 얻은 뒤 1점도 내주지 않으려 한다. ‘지키는 야구’다. 그런데 야수만의 활약이 필요한 건 아니다. 무엇보다 마운드가 높아야 한다. 특히, 선발진이다.
지난해 넥센의 선발투수 경쟁력은 하위권. 평균자책점 4.98로 8위에 그쳤다. kt(5.88), 한화(5.25)에 이어 뒤에서 세 번째였다.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밴헤켄과 피어밴드가 있었기에 이 정도. 순수 국내 선발투수의 평균자책점 성적표는 5.91(350⅓이닝 251실점 230자책)까지 치솟는다. 외국인투수 2명이 이닝의 절반 이상(374이닝)을 책임졌다.
몇 년간 국내 선발투수는 두드러진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해마다 반복됐다. 기대감을 갖고 물을 뿌렸지만 기대한만큼의 싹이 트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2016년 넥센의 열쇠이기도 하다. 예년과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넥센은 또 힘이 들 터. 하지만 180도 달라진다면, 넥센은 또 다른 힘이 생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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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잘 할게요.’ 양훈(왼쪽)과 조상우(오른쪽)는 2016년 넥센 히어로즈의 열쇠 중 하나다. 사진(美 서프라이즈)=옥영화 기자 |
8살 터울인 둘은 이번 스프링캠프 동안 ‘202호’에서 지낸다. 룸메이트는 처음이다. 조금 불편하다고 하는데 말만 그렇다. “방 안에서 별 말을 안 한다. ‘밥 먹자’ 같은 생활 대화 정도. 그냥 쉴 뿐이다. 원래 그렇다. 다른 후배랑 방을 쓸 때도.(양훈)” “난 말수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말도 많이 걸고 했는데, 훈이형과는 서로 할 일만 한다. 그래도 터치를 안 하니 편한 것도 있다.(조상우)”
넥센의 방 배정 원칙은 간단하다. 선수 자율로 결정된다. “훈이형이 야구를 잘 한다.(조상우)” “상우의 어깨가 더 무겁죠.(양훈)” “에이, 훈이형이 15승은 할 거다.(조상우)” “아~그런 말 하지 마.(양훈)” 약간 티격태격해 보여도 양훈과 조상우는 서로를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근, 아니 꽤 잘 어울리는 ‘콤비’다.
양훈과 조상우는 넥센 국내 선발투수의 기둥이다. 지난해 트레이드로 넥센의 유니폼을 입은 양훈은 어느덧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정규시즌 마지막 3번의 등판(평균자책점 1.04 17⅓이닝 2실점), 준플레이오프 2번의 등판(평균자책점 3.09 11⅔이닝 5실점 4자책) 등 총 5번의 선발로 희망을 심어줬다. 조상우 역시 지난 2년간 14승 30홀드 162탈삼진으로 넥센을 넘어 KBO리그 정상급 불펜으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대표로 발탁돼 프리미어12 우승에 일조했다.
염경엽 감독은 둘에게 바라고 싶은 건 승수 쌓기가 아니다. 아프지 말고, 선발 로테이션만 지켜줘도 최고라는 것이다. 둘의 기량을 믿기에 깔린 포석이다. 그리고 뒤집어 그 둘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훈과 조상우의 마음가짐도 그렇다. 목표는 최대한 이닝을 막고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다. “올해 넥센은 투수가 잘 던지고 잘 막아야 한다. 난 선발투수로서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게 중요하다.(양훈)” “선발투수로 시즌을 치르는 게 처음이다. 뭐랄까, 특별한 각오는 없다. 그저 내 역할만 잘 잘 하겠다.(조상우)”
이때 양훈의 또 한 번 애정 섞인 핀잔. “따라하냐. 다른 말 좀 해봐라.” 그러더니 양훈이 살을 붙인다.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로 막아야 팀의 경기 운영이나 불펜의 연계가 마음 편하지 않겠나. ‘우리’가 길게 던져주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조상우의 목표 중 하나는 로테이션 거르지 않기. 그는 ‘긴 호흡’을 위한 관리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만. “(선발투수를)안 해봤지만 한 번 부딪히려 한다.” 그러자 양훈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인’ 말을 한다. “난 선발, 구원 다 해봤다. 그래서 잘 알아. 한 시즌 동안 선발 등판을 거르지 않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쉽지가 않다. 체력 관리도 잘 해야 하는데 그냥 힘들다.”
말은 그래도 양훈 역시 자신감은 있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낀다. “제~발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당부와 함께 “잘 할 수 있을 거다”라는 응원을 하자, 표현을 ‘정정’했다.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잘 해야죠. 우리가 잘 해야 팀 성적도 좋아지니까.” 옆에 있던 조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넥센의 구상에 양훈은 3선발, 조상우는 4선발이다. 코엘로, 피어밴드와 함께 양훈, 조상우가 활약한다면, 4명만으로도 우선 넥센의 선발진이 견고해진다. KBO리그에서 안정된 수준급 선발투수 4명만 보유해도 경쟁력은 있다. 표현은 달라도 둘 다 어깨가 무겁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면 내게 부담이 된다. 그저 지금껏 하던대로 던질 것이다.(조상우)” “난 개인 승수 욕심이 많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마운드 위에서 오래 던지면서 실점은 적게 하는 것이다. 6,7이닝 3실점 이하 정도면 좋을 것 같다. 그런 게 나는 좋았다. 승리투수보다도. 뭐랄까, 짧게 던지고 내려가면 공을 던진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양훈)”
훈훈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했다. 양훈과 조상우는 서로의 강점을 묻자, ‘다정한’ 분위기 속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우는 어린 데도 부담되거나 긴장한 것 같지 않다. 대범하게 잘 던진다. 공격적인 피칭, 그 패기가 좋아 보인다.(양훈)” “훈이형은 제구가 좋다. 그리고 타자를 빨리 맞춰 잡는다. 난 그게 안 된다. 그러려고 하면 공이 빠진다. 타자와의 빠른 승부를 배우고 싶다.(조상우)”
잘 보면, 늘 형이 먼저 답한다. ‘예의’가 있고 ‘우애’가 좋다. 서로의 ‘대박’을 기원했고,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기대치를 서로의 어깨에 한 뭉치씩 얹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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