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2019년 한국 스포츠는 다사다난했다. 영광과 좌절, 환희와 아쉬움, 비상과 추락이 극명하게 갈린 한 해이기도 했다.
2019년 스포츠계에 닥친 여러 사건·사고에는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있다. 이제 저물어 가는 2019년에 사건·사건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0년에도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또는 좌절을 딛기 위해, 비상을 위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각자 살고 있을 것이다. 화제의 인물들을 되돌아보고, 그 후를 조명해봤다. <편집자 주>
2019년 1월 13일(이하 한국시간), ‘슛돌이’ 이강인(18·발렌시아CF)이 한국인의 유럽 축구 도전 역사를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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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인은 2019년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인 유럽 5대 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경신하더니 2019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을 견인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한국축구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은 이강인은 바야돌리드와의 2018-19시즌 라리가 19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42분 데니스 체리셰프를 대신해 투입됐다. B팀 이강인의 네 번째 1군 경기였지만 더욱 특별했다. 하부리그 팀이 아닌 ‘1부리그 팀’을 상대로 ‘정규리그’ 경기를 뛰었다.
17세 327일로 한국인 최연소 유럽 5대 리그(스페인·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프랑스) 데뷔였다. 남태희(알 사드)가 발랑시엔(프랑스) 소속으로 2009년 세운 18세 36일 기록을 10년 만에 갈아치웠다.
발렌시아는 18일 후 이강인과 A팀 계약을 맺고 1군 선수로 정식 등록했다. 바이아웃 금액만 8000만유로였다.
하지만 찬란한 시간만 있지 않았다. 재능을 뽐내기 힘들었다. 기회가 없었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전 감독은 이강인을 외면했다. 1군 계약 후 고작 34분(2경기)만 뛰고 2018-19시즌을 마감했다.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이강인의 임대 이적 루머까지 돌았다.
이강인의 진가가 드러난 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었다. ‘막내형’ 이강인의 정교한 왼발 킥은 붉은 전사 돌풍의 중심이었다.
두 살 위의 선수들과 대결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강한 승부욕이 돋보였다. 2득점 4도움을 올리며 준우승을 견인했다. 역대 FIFA 주관 남자 국제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이강인도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강인을 찾는 이도 많아졌다.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도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후 이강인을 발탁했다. 한 번이 아니다. 꾸준하게 호출했다. 9월 5일 조지아와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까지 치렀으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예선도 2경기를 뛰었다.
발렌시아에서도 점점 입지가 커졌다. 2019-20시즌 잔류한 이강인은 감독 교체 후 출전 횟수가 크게 늘었다. 9월 18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데뷔했으며 8일 후 라리가 1호 골이자 프로 데뷔 골을 터뜨렸다.
11월 28일 챔피언스리그 첼시전 이후 허벅지 근육을 다쳐 제동이 걸렸으나 이강인의 존재감은 그의 성장 폭만큼 커졌다. 2일 현재 공식 13경기에 출전해 총 346분을 소화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소집 명단 포함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느리다’는 지적도 받으나 완성형 선수가 아니다. 성장 속도는 분명 ‘빠르다’. 보완할 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
분명한 건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21세 이하 선수에 수여되는 발롱도르인 ‘코파 트로피’ 최종 후보로 선정됐으며 2019 AFC 어워즈에서 올해의 유망주를 수상했다.
2019년은 이강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해였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걸출한 스타가 탄생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