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도 외국인에 대한 투자 빗장을 ‘확’ 열 것으로 보인다. 사상 처음으로 왕실이 직접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규제를 ‘확’ 풀테니 투자해달라”며 읍소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공세와 함께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으로 기름으로 먹고 살던 시대가 저물자 투자유치를 통한 산업구조 변화에 나선 것이다. 특히 핵협상 타결로 이란에 대한 서방 경제제재까지 풀리면 글로벌 머니가 이란으로 대거 몰리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 핵 협상 결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살만 국왕은 그간 이란이 핵협상을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핵협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왔다.
강경했던 살만 국왕의 입장이 이번 방미에서 갑자기 바뀐 배경에 대해 미국내 전문가들은 “계속 사우디가 고집을 부리며 핵협상을 반대해봤자 이스라엘처럼 고립되는 결과만 초래하고 실익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살만국왕의 입장 변화가 결국 유가추락과 경제구조 변화 때문이라는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번에 살만 국왕은 사우디 국왕 중 최초로 투자유치단을 꾸려 동행시켰다. 투자단 유치단 대표는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 부왕세자였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살만국왕의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미국 정부 고위 관료 및 기업인을 만나 광산, 원유 및 천연가스 다운스트림(Downstream·석유 화학제품 생산), 금융, 헬스케어, 유통, 엔터테인먼트, 교육, 인프라스트럭처 등과 같은 산업분야의 미국 기업 투자를 요청했다. 그간 사우디는 가만히 있어도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이 몰리는 바람에 굳이 투자유치단을 꾸려 해외에 비즈니스세일즈를 다닌 사례가 거의 전무했다.
알 사우드 부왕세자는 기업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미국 기업들이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기업환경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외국인 지분보유에 대한 제한이 있고, 까다로운 고용 규제와 관치 등으로 사업을 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실세가 직접 나서 투자기회를 설명한 만큼 투자 걸림돌도 대거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투자를 유치해 기존에 손대지 않았던 헬스케어·엔터테인먼트·금융산업에 적극 나선 것은 지금 산업구조를 변화하지 않으면 갈수록 국력이 더 쇠퇴해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는 지난달 8년 만에 처음으로 연말까지 27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 원유가격 급락으로 재정난이 심화되자 해외에 돈을 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 경제의 더 큰 고민은 미래다.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올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콘퍼런스에 참석해 “2040년~2050년이 되면 세계가 더 이상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 태양광과 풍력 기반의 전력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사우디의 미래가 결국 산업구조 성공여부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란 핵협상 합의를 지지한다는 힘을 실어준 대신 ‘경제실리’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며 “이란이 경제제재가 풀리기도 전부터 대거 투자가 몰리는 상황이 적지않은 위기감이 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지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