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채무’가 가뜩이나 경제난에 처한 신흥국 재정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현지시간) 사실상 국가부채나 다름없는 신흥국 공기업 회사채가 급증하면서 신흥국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FT가 인용한 JP모건·본드레이더 자료에 따르면 신흥국 달러화표시 준국채 발행액은 작년 한해동안 빠르게 증가해 급기야 국채 발행 규모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신흥시장 누적 준국채 규모도 8390억달러로 늘어나 누적 국채 7500억달러를 웃돌았다. 이는 2014년 누적 준국채 7100억달러에서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준국채란 보통 정부가 50% 넘는 지분이나 의결권을 보유한 공기업에서 발행한 채권을 뜻한다. 발행 주체가 국가 자신이 아닌 공기업이기에 대차대조표상 정부 부채로 집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지급보증을 서주는 경우가 많아 실상은 국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인도·러시아·중국 등 신흥국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중만으로 재정건전성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겉으로 보기엔 낮아 보여도, 실제는 막대한 규모의 ‘보이지 않는 채무’가 감춰져 있어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흥국 경제를 둘러싼 부정적 기류가 위기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신흥국은 강달러와 바닥 모르고 떨어지기만 하는 원자재가격, 중국 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과 이로 인한 자본유출 등 각종 외부 악재에 노출돼 있다. 리 바카이트 클리어리고틀립 파트너는 “신흥국은 역대급으로 낮은 금리와 역대급으로 높은 원자재가격에 힘입어 준부채 발행을 늘려왔지만, 작년부터 상황이 거꾸로 뒤집혔다”며 “이같은 압박이 이어진다면 신흥국은 국가채무를 재조정하는 골칫거리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뿐 아니라 투자자도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명시적 정부 보증이 아닌 ‘묵시적’ 보증이라면 훗날 정부 측에서 나몰라라 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9년 두바이 국영기업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때 정작 두바이 측에선 채무 보증을 서준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민 바 있다. FT에 따르면 JP모건이 조사한 준국채 발행 공기업 181곳 중 오직 19곳
게리 클레이만 클레이만인터내셔널 컨설턴트는 “투자자들은 준국채를 정부가 보증하고 있다고 안심하지만, 실제 사건이 터졌을 때 국가에 그럴 능력과 의지가 남아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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