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2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정상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작별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의 온상으로 지적되는 영국의 EU 탈퇴 시점에 대해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지난한 브렉시티 과정을 예고했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에 따르면 EU 잔류를 외쳤던 캐머런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에서 “(영국 EU 잔류를 위한) 국민투표의 패배는 EU가 이민자를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브렉시트의 책임이 EU에도 일정 부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EU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영국이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기 전에는 공식·비공식 협상은 없다”고 맞섰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이후 벌어진 혼란을 수습할 대책을 마련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 셈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오는 10월 사임 의사를 밝힌 캐머런 총리가 총리로서 마지막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그는 28일 EU정상과 만찬에서 “대규모 이민자 유입에 대한 공포가 (국민투표 패배의) 핵심 요소였다”면서 “EU 탈퇴 협상 때 이민자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향후 영국의 EU 탈퇴 협상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또다시 이슈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국민들이 EU에 잔류하면 경제적인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민자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 강한 우려를 품었기 때문에 탈퇴를 결정한 것”이라면서 “영국이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잃는다 하더라도 EU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캐머런 총리의 이같은 발언이 영국과 EU 간 합의점 도출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영국에 시간을 줘야 한다”며 EU 정상들 가운데 유일하게 영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메르켈 총리도 이날은 강경 노선으로 전환했다.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의 참석 전 독일연방의회(분데스탁) 연설에서 “영국이 ‘체리 피킹(좋은 것만 골라 취하는 것)’하는 것은 안 된다”고 경고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면서 이민자 통제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데 대해 답변한 것이다. 영국에서 탈퇴 캠페인을 벌였던 세력들이 EU와 공식 탈퇴 협상을 하기 전에 비공식 채널을 통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의식한 듯 “영국이 탈퇴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비공식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영국이 EU의 와해를 촉발시키고도 여전히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에 대해서는 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하자 일부 유럽 정상들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결혼이든 이혼이든 어느 한 쪽이지 그 중간은 없다”고 영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영국 정치인들은 매일 밤낮으로 EU만 탓하고 있다”면서 “탈퇴를 원할 때에는 큰 그림을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무런 계획도 없다”면서 탈퇴파를 비난했다. 그는 또 “탈퇴에서 차기 총리가 나온다면 총리 취임 다음날 곧바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EU 외교관들의 분노도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한 외교관은 “국민투표는 캐머런 총리가 스스로 결정했고 자신의 임기 중에 패배했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EU 정상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메르켈 총리도 반(反)EU 정서를 업은 극우 세력이 국내에서 지지율을 높이고 있는 것을 의식해 강경론을 펼쳤지만 여전히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FT는 메르켈 총리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촉발된 정치·경제적 충격에 자극 받은 영국 정치인들이 비현실적인 기대를 접고 결정을 되돌리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독일 정치인을 인용해 “메르켈 총리가 여전히 영국이 탈퇴 결정을 재고할 것을 고려해 여지를 남겨두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영국이 리스본 조약 50조를 계속 발동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될 것 같느냐는
29일 오전 영국을 제외한 27개국 정상들은 따로 회동을 갖고 통상과 안보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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