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피자가게 ‘카밋핑퐁’. 그 안으로 총을 든 한 남자가 걸어 들어갔다. 남자는 다짜고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혔다.
워싱턴DC경찰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용의자 에드가 웰치가 ‘피자 게이트’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행 동기가 된 피자 게이트는 실제 사건이 아니다.
피자 게이트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워싱턴 인근 피자가게 지하실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다. 이는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널리 확산됐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 사건을 두고 “가짜 뉴스는 우리의 정치 토론에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의 부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다”며 가짜 뉴스의 일부가 폭력 사태로 이어진 데 대한 우려를 표했다.
◆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친 가짜 뉴스
일상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음모론은 SNS가 발달하며 날개를 달았다. 가짜 뉴스들이 더 쉽게 만들어지고 더 빠르게 퍼지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가 지난 대선기간 동안 클린턴을 공격하고 여론을 조장하는 데 이용됐다고 분석한다. 유권자들이 자극적인 가짜 뉴스에 쉽게 현혹됐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확산된 가짜 뉴스는 피자 게이트를 비롯해 빌 클린턴과 흑인 성매매 여성 사이에 혼외자식이 있다, 클린턴이 ‘이슬람 공화국(IS)’에 무기를 판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 등이 있다.
이 같은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온라인 상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 지난 8월부터 대선일인 11월 8일까지 페이스북 좋아요 등을 기준으로 콘텐츠 도달률을 조사한 결과 상위 20개의 진짜 뉴스는 736만7000건의 도달률을 기록한 반면 가짜 뉴스는 870만1000건을 기록했다.
트럼프 참모들도 대선기간 동안 가짜 뉴스를 활용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차기 정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이 대선 직전 몇 개월 동안 트위터를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16번 확산하는 데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플린은 자신의 트위터에 “뉴욕 경찰이 클린턴의 메일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돈세탁과 미성년자 성범죄 등의 단서를 발견했다” 등의 글을 올렸다.
◆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가짜 뉴스
가짜 뉴스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 팩트체크 전문사이트 파젤라 폴리티카는 지난 4일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탈리아의 SNS에서 공유된 관련 뉴스 중 절반이 가짜 뉴스라고 밝혔다.
그 중에는 국민투표 전에 ‘찬성’을 찍은 가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글, ‘찬성’에 투표하면 학교와 병원의 민영화로 이어진다는 글, 이탈리아 유명 여배우가 ‘반대’가 승리하면 은퇴한다는 글이 주를 이뤘다.
또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라는 가짜 뉴스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 태생의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를 당해 난민들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SNS를 타고 유럽을 뒤흔들었다. 이 이야기는 거짓으로 확인됐으나 독일 내 러시아인들이 크게 반발하며 양국의 외교장관이 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 가짜 뉴스의 생산자는 누굴까?
누가 이런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짜 뉴스들이 대부분 흑색선전을 통해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 무너뜨리거나 정책의 방향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보의 유통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존에는 언론사들이 정보를 선별해 생산하고 유통해왔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며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퍼트릴 수 있게 됐다. 특히 SNS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은 추천 기능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극적인 정보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로 인한 논란이 확대되자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구글은 정확한 뉴스 검색을 위한 알고리즘 개선과 함께 광고 플랫폼에 가짜 뉴스 사이트가 노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
페이스북은 최근 큐레이션과 자동화를 통해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짜 뉴스를 신고하는 기능 운영도 시작했다. 앞으로 페이스북은 허위 정보 신고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허위로 판명된 정보를 사용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짜 뉴스의 생산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자신이 읽은 가짜 뉴스를 공유하기 전 검증할 능력을 가진 사용자도 소수에 불과하다. 사적 영역인 SNS를 타고 퍼지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뾰족한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메르켈 총리는 “오늘날 스스로 내용을 재생산하고 특정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가짜 뉴스들이 문제가 되고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서 팩트 체크를 담당하는 사뮈엘 로랑 국장도 “프랑스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곳들이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다”며 “진실을 가로막는 가짜를 가려낼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국 서정윤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