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상보다 훨씬 이른 내달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3일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내달초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양국 실무진이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되 회담 장소는 워싱턴DC가 아닌 미국 내 다른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회담 의제로는 '하나의 중국'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환율조작국 지정, 공정한 무역질서 확립, 한반도 사드 배치, 북한 핵·미사일 위협 공동대응 등 미·중 사이에 불거진 각종 이슈들이 총망라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재촉해 양국 정상회담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달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전화통화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간의 미·중 갈등 양상에 비춰볼 때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것도 상호 방문의 형식이 아니라 오는 7월 독일에서 열리는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잠깐 만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서둘렀다. 미국 대선 때부터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계속되면서 시 주석으로서는 양국 갈등을 조기에 진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기싸움'을 하느라 대화를 무작정 미루다가는 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 주석은 특히 올 가을 중국 최고 지도부가 교체되는 제19회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미국과의 외교 마찰이 지속되는 것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안정적으로 집권 1기를 마무리하고 장기적인 차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조속한 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일단 기선제압에 성공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시 주석에 앞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먼저 전화통화를 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면서 중국을 자극했다. 또 환율조작국 지정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거론하면서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
취임 20여일 만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서 일본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도 시 주석과 중국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남중국해 군사력 확장을 예고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VX가스를 활용한 김정남 암살도 중국의 입지를 좁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중국이 지난 달 18일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의 비판이 국제사회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미·중 정상회담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중국 내 미국 통인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급파했다. 지난 달 27~28일 미국을 방문한 양 국무위원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허버트 R.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잇따라 만나 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협의했다. 양 국무위원은 3월 중순까지 열리는 중국 양회가 끝난 직후에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양 국무위원의 뜻을 수용한 미국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이달 중 중국을 방문해 구체적인 정상회담 방식과 의제를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조기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미국 측에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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