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 수위가 높아지는 와중에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지만, 한국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지원사격'은 없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베이징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오후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왕이 부장은 "중국은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한 반대입장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주 틸러슨의 한국 방문때부터 제기된 터였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은 사드 문제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거나 중국의 반대에도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 불가피성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그는 한국을 방문했을때 윤병세 외교장관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에 대해 "중국이 이러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회견에서 틸러슨 장관이 사드배치에 관해 원론적인 입장이라도 한번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물론 구체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회담에선 틸러슨이 한반도 사드배치 필요성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공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만한 신호를 내놓지 않아 오히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공세가 용인된 듯한 오해를 양국에 던져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오히려 이번 회담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양측이 내달 초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는 것. 이에 따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남중국해 문제나 무역전쟁, 대만문제 등 다른 현안 조율을 위해 사드 문제를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논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심시어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에 마땅한 대응카드가 없어 미국에 의지하려던 한국으로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사드 운용주체인 미국이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이나 설득없이 한국의 조기대선 전 사드배치를 서두르고, 중국도 미국 대신 한국에 분풀이를 계속할 경우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에서 '넛 크래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틸러슨은 또 북한에 대한 핵포기 압박과 관련해서도 중국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한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은 회담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논의했으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원론적인 선에서 합의하는 데 그쳤다. 틸러슨 장관은 "우리는 공동 노력을 통해 평양의 방향을 조정하고 핵무기 개발을 중단토록 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미국의 대북압박 강화 요구에 맞선 것으로 해석된다. 왕 부장은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재천명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불참선언으로 이미 용도폐기된 6자 회담을 재개하자는 의미다. 이는 틸러슨 장관이 일본과 한국 방문에서 "북한의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 전에는 대화는 없다"고 밝힌 6자회담 불가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해법이다.
이에 따라 내달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해법에 관한 의미있는 합의 도출이 어려울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그동안 미국을 갖고 놀았다"며 대화보다는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대북압박 강화에 무게를 두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18일 양국 외교장관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 문제도 미중 간 양자 현안에 묻혀 핵심 의제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은 이미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 징계 등 중국에 대한 고강도 압박카드를 꺼내든 만큼 중국 기업이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중국 정부가 계속 묵인할 경우 세컨더리보이콧 등 강경한 대응에 나설 수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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