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에 이어 영국 런던까지 유럽 3대 강국의 수도가 테러의 급습을 받았다. 유럽 각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계를 강화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열 포졸이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옛말이 들어맞았다고 할까.
이번 테러는 유럽연합(EU)의 초석을 놓았던 로마조약 체결 60주년 기념일인 23일(현지시간)을 목전에 두고 발생한 것이어서 EU로서는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영국이 통보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이달 말 시작되기 때문에 EU 내의 결속을 다지려는 시점에서 발생한 테러이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는 향후 EU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 반(反)난민, 반이슬람을 기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EU 극우 포퓰리즘(대중인기연합주의) 정당의 목소리가 더욱 게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 용의자가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란 추정 때문에 향후 이민·난민 이슈가 EU 정치를 집어삼킬 태세다.
지난 15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달리 극우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예상 밖에 19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원내 2당으로 올라선 것은 상징성이 크다.
내달 23일 예정된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지지율 1위로 결선투표 진출이 유력하다. 결선투표에서 중도신당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게 패배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번 테러로 프랑스 대선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테러 전 결선투표에서 르펜의 당선 가능성이 4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르펜이 대통령 권좌를 거머쥘 수도 있다.
르펜이 비록 패배하더라도 5~6월 예정된 프랑스 총선에서 FN은 원내 1당을 차지할 수 있다. 대선은 1위가 모든 것은 가져가는 '승자독식'이지만 총선은 다르다. FN이 원내 1당이 될 경우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9월 23일 독일 총선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대안당'으로서는 총리를 배출할 수 없지만 15%대에서 정체되고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호재'로 삼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의 어머니'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서는 4선 연임에 최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증오를 숙주로 삼고 있는 극우정당은 EU의 미래를 물론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테러의 원인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이민·난민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좌절감이 극단적 이슬람주의로 경도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백인 원주민과 이민·난민 간 적대감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EU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최근 프랑스 대선후보 간 1차 TV토론에서 르펜은 EU 탈퇴만을 부르짖었을 뿐이었다. EU 탈퇴가 되면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근거 없는 '장밋빛 공약'만 되풀이했다. E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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