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외국 정상들과 한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멕시코 장벽 건설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장벽 건설 비용을 멕시코에게 100% 부담시킬 것"이라고 호기롭게 밝힌 지 불과 이틀만에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면서 "비용은 다른 곳에서 끌어올테니 언론에는 절대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통사정하고, 호주 총리와의 통화에서는 "오늘 하루 중 가장 불쾌한 통화"라며 통화를 급작스럽게 끊어버리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상 간 통화내용 유출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7일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28일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통화한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입수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가 장벽 건설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음을 알고서도 멕시코에 비용을 100% 부담하게 하겠다고 떵떵거렸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나온다.
녹취록에 따르면 미국의 대(對) 멕시코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하며 대화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장벽 건설 비용을 부담시키겠다는 공약이 나에게 정치적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며 "비용 문제는 어떻게든 잘 해결될테니 언론에 비용을 못 대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말해서는 안 된다"고 수 차례 반복 요청하면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벽 건설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당신들과 관계를 끊을 것"이라는 위협도 가했다. 장벽 건설 비용은 다른 곳에서 충당할테니 관련 질문을 받을 경우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말해 달라고 요청하며 "장벽이 우리의 대화 중 가장 덜 중요한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턴불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는 막말을 쏟아냈다. 전임 정부가 호주와 체결한 난민협정을 "최악의 멍청한 협정"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협정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턴불 총리에 대해 "충분하다", "신물이 난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불쾌한 통화" 등의 막말을 쏟아낸 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전화를 끊어버렸다.
뉴욕타임즈(NYT) 등 미국 언론들은 녹취록 내용을 보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이슈에 대한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임기 초반 전화통화에서 외국 정상들에게 양보를 압박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WP 보도 이후 백악관은 강력 반발했다. 린제이 월트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녹취록 유출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며 "대통령의 업무 수행과 타국 정상과의 협상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물론, 반대자들도 녹취록 유출에 우려를 표명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이었던 데이비드 프럼은 "대통령 반대자들이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았다"며 녹취록 유출을 맹비난했다. 그는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랫동안, 그 어떤 해외 정상도 워싱턴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국방부·국무부 대변인을 지냈던 존 커비도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번 사건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훼손하는 위험한 시도"라며 프럼에 동조했다 커비는 "이런 내용이 유출된다면, 앞으로 그 어떤 통화도 유출될 수 있다"며 "해외 정상들은 앞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원 정보위 소속인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은 지체없이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출 쓰나미'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에 하나 꼴로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들이 유출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5월 25일까지
[노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