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시행을 맡은 을지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토지보상비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보상비를 통보받은 후 한 토지주가 사망하자 불만과 문제 제기가 불붙고 있다.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 보존 문제로 인근 세운3구역이 제동이 걸린 데 이어 세운4구역도 잡음이 일면서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이 암초에 걸린 모양새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지난달 말 사업시행사인 SH공사로부터 '종전자산 감정평가금액'을 통보받았다. 종전자산 감정평가금액(이하 감평액)이란 재개발사업 시행 전 토지주의 자산 가치를 평가한 금액으로 향후 조합원 분담금이나 토지 보상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다수 토지주들은 감평액이 너무 낮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감평액은 공시지가의 120~130% 수준에서 결정되는데 세운4구역의 경우 공시지가와 같거나 더 낮은 수준에서 감평액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감평액이 낮을 경우 조합원 분양 시 분담금이 올라가거나 분양을 포기하고 현금 보상을 받아도 보상비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토지주 이 모씨(79)가 감평액을 통보받은 후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 21일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여론은 더 악화되고 있다. 한 유족은 "평소 지병이 없이 건강했던 분인데 SH공사가 보낸 통지서를 확인하고 갑자기 쓰러지셨다"며 "평생 힘들고 정직하게 일해서 모은 돈으로 산 상가인데 턱없이 낮은 감평액에 충격이 크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서울 표준지 공시지가는 평균 13.87% 올라 2008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런 현실이 세운4구역 공시지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세운4구역에 위치한 예지동 119 건물의 경우 2012년도 이후 약 7년간 공시지가가 ㎡당 979만~1000만원에서 유지됐다. 같은 기간 재개발이 추진된 인근 세운3구역이나 수표지구의 공시지가가 꾸준히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SH공사는 이와 관련해 "감평액은 종로구청에서 선정한 2개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산출된 객관적 금액으로 SH공사가 임의로 낮출 수 없다"며 "공시지가 역시 국토부 관할 감정원이 산정하는 금액으로 공사가 개입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세운4구역 재개발은 '공공시행자'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공시행자 방식이란 토지주들이 결성한 조합이 아니라 SH공사와 같은 공기업이 사업시행을 대신 맡는 방식이다.
그러나 비대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개발 방향이 수정되면서 사업 기간과 비용이 되레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 맡으면 금세 진행될 줄 알았던 사업이 벌
세운상가 일대 유일한 통합개발 지역인 세운4구역은 기존 상가를 헐고 연면적 30만㎡ 규모의 호텔·오피스텔 등 복합시설 9개 동을 짓는 사업이다.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