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미술을 시각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이는 세계 이면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리는 것이 진정한 미술이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미술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화두로 삼아 예술세계를 펼치는 화가가 있다. 1996년부터 서울 북촌 화동에서 우리들의눈갤러리를 열고 디렉터를 맡고 있는 엄정순. 그는 시각장애인들과 수십차례 협업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를 수십년간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20년 가까이 되는 지난한 노력의 결과물과 예술적 성취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미술관 전시실1에선 엄정순을 비롯한 전업 작가들과 시각장애학생들이 공통 소재인 코끼리를 소재로 표현한 회화, 입체, 설치, 영상 등 30여점을 펼쳐보인다.
코끼리는 육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자 조선 시대에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사육된 ‘이방인‘과도 같은 낯선 존재다. 전시명 ’코끼리 주름 펼치다‘와 관련해 기획자인 양혜숙 미술관 큐레이터는 “태고의 모습을 지닌 코끼리가 우리 세대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수많은 시간과 공간의 주름 속에 접혀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예술가의 눈으로,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관객의 눈으로 그 주름을 펼쳐본다”고 설명했다.
작가 엄정순은 무수한 선의 생성과 소멸, 그 행위의 반복을 통해 코끼리를 표현한다. 그는 “’본다‘라는 지속적인 행동은 ’나‘라는 ’근원의 자락‘을 어렴풋이 보이도록 했다”며 “내 근원의 한 자락은 슬픔이었고 한반도에 왔던 모든 코끼리의 근원도 ‘슬픔’이었음을 직감했다”고 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시각이 아닌 코끼리를 더듬는 촉각적 행위를 통해 코끼리라는 현 존재를 시각화한다.
전시는 엄 작가의 ‘코끼리 걷는다’ 시리즈와, 우리들의눈갤러리가 시각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술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주축으로 구성된다. 지하1층 어린이갤러리에서는 ‘끼리끼리 코끼리’전이 이어진다. 육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의 생태와 인문학적 메시지를 어린이들이 오감으로 감상하는 체험전시로 꾸며진다. 관람객은 부분을 통해
소외계층과 타자를 예술이라는 테두리에 끌어들이고, 또 낯선 존재를 우리 사회에 융합시키는 예술의 긍정적인 기능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02)2124~5201
[이향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