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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무대 세트 안에서 배우들의 땀과 열정, 연출과 작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대학로를 두 번 뒤집어놓았다. 지난해 4월 26일~7월 13일 초연에서 90회 매진, 객석 점유율 104% 기록을 세웠다.
큰 성공에 힘입어 6개월 만에 다시 무대를 열었다. 프리뷰티켓이 단 2분만에 900석 전석(6회 공연)이 팔렸고 지난달 26일 개막 후 객석점유율 100%를 달성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여파와 올해 공연 비수기(1~3월)를 이겨낸 비결은 아날로그 감성과 복고, 스포츠 정신, 폭소를 유발하는 기막힌 장면,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 등이다. 극 배경은 1997년 고교전국체전. 슬럼프에 빠진 전북체고 유도선수 ‘경찬’은 교장이 아끼는 개 ‘봉구’를 잡아먹은 죄로 얼떨결에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메달을 따면 용서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지난 11일 공연에서 경찬 역을 맡은 배우 박훈의 몸은 날렵했다. 매서운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나는 빠르게 알 수 있다. 상대의 힘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어떤 기술을 쓸지…’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곧 어이없는 반전. 재빨리 기권을 선언한 경찬은 “항복했는데 왜 때리냐”며 상대를 원망한다. 멋진 승부를 잔뜩 기대했던 객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그래도 유도 장면 만큼은 실감난다. 배우들이 두 달 동안 체육관에서 유도를 전수받은 후 매일 연습한 결과물이다. 구르고 메치고 뛸 때 땀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유도선수 김재범과 왕기춘이 공연을 관람한 후 “실제 선수 같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박진감과 에너지 넘치는 스포츠 장면에 복고 코드가 가미된다. 199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그룹 HOT ‘캔디’, UP ‘뿌요뿌요’, 젝스키스의 ‘폼생폼사’, 지누션 ‘말해줘’ 등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노래방과 PCS, 삐삐, 워크맨 등도 빠질 수 없는 소재다.
90년대 아이콘들은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에 윤할유를 뿌린다. 전국체전에서 선서를 하는 배드민턴 선수 ‘화영’(배우 정연)에게 반한 경찬은 삐삐 번호를 알아내 ‘1004’를 찍어댄다. 두 사람이 노래방 데이트에서 마지막 곡으로 공일오비 ‘이젠 안녕’을 부르는 대목에 공감이 가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화영 곁에는 오빠 친구이자 복싱선수 ‘민욱’(배우 차용학)이 버티고 있다. 워크맨을 나눠 듣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은 있지만 눈치만 본다. 대본을 공동 집필한 이재준 연출(38)과 박경찬 작가(34)의 추억이 가미되어 보다 입체적인 청춘이 완성됐다.
주인공의 첫사랑과 우정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성장통이다. 지는 게 죽기보다 싫고 아픈 건 더 싫은 경찬은 한 때 올림픽 꿈나무였다. 하지만 유도에 흥미를 잃은 후 코치와 후배, 가족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화영에게 잘 보이고 싶어 전국체전 8강전까지 올라갔지만 쓴 패배를 맛 본다. 좌절하는 경찬에게 코치는 “지는 것을 못 가르쳐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경쟁 선수의 부상으로 우여곡절 끝에 4강전에 올라간 경찬은 조르기를 당하면서도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진 끝난게 아니랑께”라며
배우들의 땀과 에너지로 가득찬 이 작품은 곧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JK필름이 영화로 만들고 이재준 연출이 메가폰을 잡는다. 공연은 5월 3일까지.
※문의 = (02)744-4331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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