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뮤지컬 ‘사의찬미’ 극작가 겸 연출가 성종완)
1926년 8월4일 극작과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현해탄 투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창작뮤지컬 ‘사의 찬미’는 “시모노세키발 관부연락선 이제 출발합니다”라는 음성과 극의 시작을 알린다. 어둠 속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배를 형상화 한 무대와, 1926년 8월4일 부산으로 향하는 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막, ‘사의찬미’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의문의 사내다.
‘사의 찬미’의 출연인물은 모두 세 명이다. 실존인물인 김우진과 윤심덕에 그리고 사람인지 악마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를 추가시키면서, 극은 스릴러와 멜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 사진제공=네오 |
김우진과 윤심덕을 자신이 쓴 소설 속 남녀주인공들처럼 권총자살로 이끄는 사내와, 그런 사내에게 맞서기 위해 배에서 투신하는 김우진과 윤심덕, 이들의 폭풍과도 같은 사투가 끝나면 극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관객들은 다시 처음에 마주했던 배를 형상화 한 무대와, 1926년 8월4일 부산으로 향하는 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막, 그리고 ‘사의찬미’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사내와 마주하게 된다.
◇ “마지막까지 전하고자 했던 건, 주어진 삶에 대한 태도”
‘사의찬미’는 2014년 재연까지 ‘글루미데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을 만나왔던 작품이었다. 삼연에 와서 ‘글루미데이’라는 명칭 대신 처음 극작가가 명명했던 ‘사의찬미’로 돌아왔다. 처음의 이름으로 돌아온 ‘사의찬미’가 관객들에게 자신 있게 내미는 것은 바로 2013년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극본과, 3중주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넘버, 그리고 더욱 다양해진 캐스팅이 완성시킨 배우들의 합이다.
↑ 사진제공=네오 |
‘사의 찬미’의 성완종 연출가는 “정성껏 만들었다. 저희끼리도 이야기하는데 스태프에서부터 배우들까지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이들이 하나도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담아서 무대에 오르다 보니, 배우들도 다 좋은 추억들로 뭉쳐 있다”며 “관객들 역시 이 좋은 기운을 느낄 뿐 아니라,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느낌이 있어, 이 작품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삼연에 오를 수 있었던 인기 비결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의찬미’의 대본을 집필한 작가이자 무대를 총괄한 성완종 연출자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해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사의 찬미’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싶었다. 여기 안에 있는 두 남녀주인공은 결말이 정해졌다는 전재에서 최대한 생명적이고 저항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정해진 삶을 따르기보다 선택하고, 그렇다고 두려운 존재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의찬미’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배우들의 합
‘사의찬미’의 출연진은 세 명 밖에 되지 않는데, 정작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10명이 넘는다. 한 캐릭터당 포 캐스팅인 것이다. 그렇다고 스타 캐스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김우진 역에 김종구, 정동화, 정문성, 이충주, 윤심덕 역에 안유진, 최수진, 신의정, 사내 역의 최재웅, 정민, 이규형, 김종구, 출연 배우 모두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로만 구성돼 있다.
“똑같은 공연인데 배우에 따라서 배우의 조합에 따라서 다른 공연을 보는 것 같다.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 해석들에 집중했다. 소극장 미학이랑 대극장 미학이 따로 있다고 보는 주의인다, 대극장은 화려한 비주얼과 다양한 무대 매카니즘이 소요되는 반면, 소극장은 외적인 요소보다 배우의 연기로 환상을 줘야 한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로 극에 몰입하게 만들고 소통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제가 ‘사의찬미’를 연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우들이 더 연기에 몰입할 수 있고, 관객들이 배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작은 역할의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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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네오 |
더욱 특이한 점은 포 캐스팅이기는 한데, 김우진 역과 사내 역에 배우 김종구의 이름이 공동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종완 연출가는 “재연 때부터 제기됐었던 아이디언데, 삼연에 와서 시도할 수 있게 됐다. 4연때에는 또 다른 시도가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많고 많은 배우들 중 성종완 연출가가 의도했던 대로 보여준 배우는 누구이며, 이와 정반대의 해석을 보여준 이는 누구인지 궁금해 졌다. 이에 대해 성종완 연출가는 의도대로 잘 해석해준 배우로 김우진 역에 이충주, 그리고 사내 역에 정민을 꼽았다.
“이충주의 경우 거만하면서도 까칠한 김우진을 잘 표현했다. 제가 처음에 설정했던 김우진은 내성적인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이지만 뜨겁고 열정적인 여자 윤심덕에게 매력을 느낀 것이다. 거기에 이충주라는 배우의 음성에서 음침함이 살짝 묻어 나오는데, 그런 부분이 김우진과 가깝다고 느꼈다. 정민의 경우는 팔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인간같이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처음 제가 설정했던 사내는 인간 같으면서도 인간 같지 않은 모호함이었다. 정민은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정 반대의 해석을 보여준 배우로 사내 역의 최재웅을 꼽았다.
“최재웅은 사내를 인간적인 매력으로 풀어낸 배우다. 제가 의도했던 바와 가장 멀지만, 배우 스스로 확신을 가진 해석과 매력으로 어필을 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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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네오 |
◇‘사의찬미’ 소극장 무대미학을 극대화하다
‘사의 찬미’의 특징 중 하나는 무대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일들은 배를 형상화 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무대 전환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놓인 소품 하나도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거나 바뀌는 일이 없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절묘하게 교차시킨 ‘사의찬미’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변화들은 배우들의 연기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질 뿐이다.
“무대 예술은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제한된 공간에서 모든 것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빠르게 바꾸면서 미장센들을 만들 수 있지만, 빠른 전환으로 환상을 주지 못한다면 원 세트의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연출을 이뤄내야 한다고 본다. 소극장의 좋은 것 중 하나가 몇몇의 공간과 거리감 높이감, 그리고 입체감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의찬미’는 배의 형상을 한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이 펼쳐지지만, 김우진과 윤심덕이 뛰어든 순간, 배라는 갇혀있는 공간에서 더 넓은 세상을 갔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변화 없는 무대에 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바로 빛과 소리다. 조명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고,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스산한 멜로디를 교차시키면서 중심인물들의 관계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명디자이너와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받았다. 제한된 공간에서 그려낼 수 있는 그림들이 한정되니, 디테일에 치중하게 되더라.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으니 그림자라든지 자막 등을 통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미니 오케스타라가 들려주는 날 것의 묘미
배우들과 더불어 ‘사의 찬미’가 자신있게 내미는 것은 바로 미니오케스트라다. 소극장 무대인 만큼 MR로 처리할 법하지만, ‘사의찬미’는 전곡을 3중주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극을 이끌어 간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보여주는 운명적인 러브스토리에 빠져들 찰라, 갑자기 등장한 사내로 인해 공연장은 순식간에 긴장으로 물든다. 때리는 듯 강렬한 피아노와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은 극적인 효과가 가미되지 않았음에도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데 한 몫 한다.
“‘뮤지컬이 라이브가 기본이 돼야 한다’ 뮤지컬을 연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음악가가 이야기 했는데 외국에서는 MR이라는 용어도 없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연주하는 음악만이 음악이라는 것이 내가 배웠던 내용이다. 웬만하면 라이브로 하고 싶은 것이 소신이다”
3중주 오케스트라는 무대 뒤에 완벽하게 감춰져 그 정체를 노출하지 않는다. MR이라고 하기에는 생생하고, 그렇다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보기에는 무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관객들은 커튼콜에서 오케스트라의 존재를 확인하고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연주자를 감췄던 이유는, 어쨌든 세트에 많은 노출이 되면 관객이나 연주자나 몰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초연 때는 무대 위로 올렸는데, 연주자들이 어두움 속에서 연주를 한다는 어려움이 있더라. 원래는 가둬놓고 왈츠 추는 신에서는 보여주고 커튼콜 때까지 감춰놓고 싶었는데…어찌됐든 3인조 미니오케스트라는 이 공연에 가장 큰 자부심 중 하나다”
한편 ‘사의찬미’는 오는 9월6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