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의 여운이 꽤 길다.
과거로부터 걸려온 간절한 신호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형사들이 특별한 공조수사를 통해 오래된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기존 수사물의 퀄리티를 한 차원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미제사건을 둘러싼 인물간 갈등에서 나아가 권력층의 비리와 정·경 결탁까지. 최종회차 엔딩 순간까지 촘촘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얽힌 구도. 극중 등장한 각종 사건들은 실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비극(미제사건 포함)들을 모티브로 해 더욱 공분을 샀다.
한순간도 표현하지 못했던 내면의 슬픔을 간직한 주인공 3인방이 모든 진실을 마주하게 된 순간, 주먹을 불끈 쥐던 시청자들도 궁극엔 탄복했다.
‘시그널’의 무전은 때로는 과거를 바꿨고, 나아가 미래를 바꾸기도 했다. 달라진 미래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조폭들이 요양병원에 들이닥친 그 시각, 뒤를 돌아보며 건재함을 드러낸 이재한(조진웅 분)처럼 .
‘시그널’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여전히 “치지직~” 어디선가 무전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쩌면, 그 마침표가 쉼표가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에서일까. ‘시그널’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안고, ‘시그널’의 엄마 김은희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②에 이어)
-이제 전무후무 한국 드라마계를 대표하는 ‘범죄 수사물 전문’ 작가가 되셨네요.
▲수사물만 너무 했더니 밑천이 많이 떨어져서요(웃음). 제가 했던 걸 피해야 하니까 힘은 드는데,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또 제게 기대하시는 게 이쪽이기도 하더라고요.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이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맨틱코미디는 절대 못 쓸 것 같지만요.
-그간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각성하고 잊지 않아야 할 사건, 일들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주곤 해오셨어요. 평소 그런 부분에 많이 생각하고 관심 갖고 지내시나요?
▲꼭 사건 이런 분야에 탐닉하는 건 아닌데 좋아하긴 해요. 예전부터 좋아해왔는데 ‘싸인’ 때부터 하도 많이 봐서 안 본 책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책들이 새끼를 낳고 또 그 책이 새끼를 낳고 해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경악스럽게 만드는 사건들이 작가님께는 새로운 아이템이 될 듯도 한데요.
▲꼭 그런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봤던 책, 영화 그런 게 은연중에 자기 안에 담기는 것 같아요. 저만 특별한 사건을 기억한다기보다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그널’은 사건과 인물의 감정이 굉장히 잘 버무려진 작품이었어요. 촘촘하게 연결되는 사건들 속에서도 사건으로만 집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인물의 감정 쪽으로만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완급 조절이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그건 늘 숙제인 것 같아요.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뭐가 재미있고 재미 없는지는 정답이 없잖아요. 사건을 따라가는 반전이나 복선 그런 재미도 중요하고,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보는 것도 재미고요. 결국 드라마다 보니까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시그널’은 또 미제사건이라서 다루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이것저것 안배하느라 힘들었는데 그래도 재미있다 말씀해주시니 ‘너무 많이 잘못 쓰진 않았구나’ 싶은 생각은 들어요.
-집필하면서 가장 경계하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재미없게 가면 안 된다’는 거요. 구성안을 짤 때마다 극의 재미를 위해서 너무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가져오지는 말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 다짐했죠. 감독님과 논의를 많이 했는데, 제가 걸리는 부분은 감독님도 걸려하셨어요. 이게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일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최대한 고민했죠. 가장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요.
-언제부턴가 남편을 역전했는데 ‘시그널’로 완벽 역전하신 분위기에요.(김 작가는 1998년 장항준 감독과 결혼했다.)
▲역전은 그전부터 했던 것 같고요(웃음). 영화라는 작업이 굉장히 힘들다 보니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고, 오빠는 영화 하고 나는 드라마 하고 그러다 보면... 아 그래도 역전은 안당하고 싶어요. 놓치지 않을 거예요.
-남편의 매력은 뭔가요?
▲거의 20년 가까이 사는데, 무슨 매력이 있겠어요 하하하. 굳이 찾아보자면 음... 웃겨서 결혼했는데. 저는 웃긴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요즘도 말은 잘 통해요. 그런데 게을러서 레퍼토리 개발을 안 하네요. 그래도 말 잘 통하고, 착하다는 점? 외모는 ‘못친소’까지 갔으니 뭐... 원래 얼굴 보고 결혼한 건 아닌 듯 하니 개그나 코미디에 힘썼으면 좋겠네요.
-가족의 감상평은 어땠나요.
:▲장감독 왈 ‘너는 모르겠고 연출이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딸은 되게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됐는데, ‘유령’과 ‘쓰리데이즈’는 무서워서 못 봤지만 ‘시그널’은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도 있으시겠어요.
▲있죠. 조금이라도 ‘새로워졌다’, ‘이런 면이 발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좀 더 천천히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앞으로 제가 몇 작품을 더 쓸 지 모르지만 하나당 거의 2년 정도 걸리는 일이라서요. 제 필력도 필력이지만 좋은 연출, 좋은 배우 만나는 복도 있어야 하고, 아이템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 것 같아요.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신중하게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작가의 삶은 어떠세요?
▲저는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안 써질 때는 죽을만큼 힘들 때도 있어요. 체한 듯 속이 답답하고 너무 막막할 때도 있는데, 애 낳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끝나고 나면 또 그 힘듦을 잊게 되죠. 그래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고 있으면서 뭐가 힘들다고~ 라는 자기 세뇌를 시키는 편이에요. 특히 지상파건 케이블 합쳐도 사실 한 해에 들어가는 드라마 수가 많지 않은데, 그 안에서 내가 쓴 대본이 어떤 감독님을 만나 누군가 연기해준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거든요.
-작가로서 급성장한 편이세요.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2010)가 데뷔작이고, 지상파는 ‘싸인’(2011)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그녀는 ‘유령’(2012), ‘쓰리데이즈’(2014)에 이어 ‘시그널’(2016)을 필모그래피로 채웠다). 너무 마음이 급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집필)감을 유지하는 선에서 완급 조절을 잘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후배 작가들에게 선배로서 조언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저도 선배작가님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내가 10%가 변하면 글이 0.1% 변한대요. 나의 모든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는 거니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를 단련시키는 것 밖에 없다더라고요. 글은 그 사람의 깊이만큼 나오는 거니까,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해서 보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듯 하고. 좋은 모니터요원을 옆에 많이 두는 것도 좋아요. 모니터를 안 하면 내 안에서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글을 볼 줄 아는 사람, 선배들이 곁에 있는 건 좋은 일
-끝으로 ‘시그널’처럼 과거의 누군가에게 무전을 보낼 수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무전을 보내시겠어요?
▲(망설임 없이) 과거의 나에게 보낼 거예요. ‘싸인’ 그렇게 쓰지 말라고. ‘너 지금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해주고 싶을 겁니다 하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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