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그 자체로 컨텐츠가 된 시대다. 바야흐로 ‘추억 마케팅’ 붐이다. 그 시원은 4년 전인 2012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와 영화 ‘건축학개론’이 촉매제가 되어 온 사회에 ‘복고열풍’을 몰고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물론 변화도 있었다. 비단 과거 트렌드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이젠 옛 컨텐츠를 ‘있는 그대로’ 살려내는 방식이 대중문화계(영화·가요·드라마) 전반에 퍼진 것이다. 여기엔 발달된 ‘컨텐츠 복원기술’과 ‘아날로그 회귀 열풍’이 한 몫 했다. 빛바랜 추억을 향유하려는 대중 수요와도 절묘히 맞물려 일대 현상이 됐다.
◆가요계, 엘피판(LP) 활황
가요계 추억마케팅의 일등공신은 ‘엘피판’(이하 LP)이다. 음반 CD의 보편화 이전까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이 물건에 다시금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5년간 LP 판매량은 연간 평균 70.3%씩 늘었다. 올 들어서만 지난 3월까지 1만4146장이 팔렸다.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팔린 LP판은 고 신해철의 유작이 수록된 한정판 ‘웰컴 투더 리얼 월드’(2015)로, 전람회 1집 ‘기억의 습작’(2014), 김동률의 한정판 ‘동행’(2015) 등이 뒤를 잇는다.
교보문고 핫트랙스도 같은 모습이다. 핫트랙스 관계자는 “음반시장 전체가 LP 수요가 늘고 있어 LP 전용 매대를 교보문고 강남점 등 여타 지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지던 LP가 다시 한 번 주목받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대체로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만큼 희소한 상품을 소장하려는 대중의 욕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옛 음악을 ‘있는 그대로’ 누리겠다는 대중의 아날로그 수요 또한 중요한 요인일 테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 위주로 생산·소비되는 요즘의 음악 시장에 식상함을 느낀 대중의 다수가 보다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음악을 찾아 헤맸다”며 “그 과정에서 LP를 주목하게 됐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추세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P 소비자의 80% 가량이 남성이고 40~5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2011년 1월~ 2016년 3월·예스24 판매량 기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 LP를 다시 한 번 불러들여 옛 향수를 누리려는 중장년층의 욕구가 읽히기 때문이다.
◆영화계, 다시보기 열풍
영화계에 불고 있는 추억 마케팅 붐은 ‘재개봉 열풍’에서 잘 나타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친 화질의 옛 영화가 속속 최신 화질로 복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아날로그 형식의 기존 컨텐츠를 디지털 포맷으로 전환해 더 나은 품질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일례로 지난 4월 13일, 국내에서 17년 만에 재개봉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는 1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달 7일, 20년 만에 재개봉한 ‘비포 선라이즈’(1996) 또한 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최준식 홍보팀 과장은 “영화가 보편 문화가 됨에 따라 관객 전반의 영화 지식과 이해도가 높아졌다”며 “자연스레 옛 명작들에 대한 관심까지도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재개봉 물결은 고전이 된 예술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영화사 백두대간은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를 47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했다. 트뤼포의 ‘줄 앤 짐’(1961)과 베르톨루치의 ‘순응자’(1970)도 올 초 이 영화사를 거쳐 재개봉했다. 백두대간 박성민 차장은 “영화사(史)에서 유명한 아날로그 작품들은 재복원을 통한 HD급 화질로 국내에 재상영된다”며 “보통 해외에서 디지털 변환을 거친 뒤에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열기는 지난해에 이미 시작됐다. 11월 개봉했던 명작 멜로 ‘이터널 선샤인’(2004)은 연초까지 49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이와이 ?지가 연출한 ‘러브레터’(1995)도 세 번째 개봉(1월 14일)임에도 7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재개봉 영화는) 옛 작품에 익숙지 않은 젊은층에게는 호기심을, 옛 작품에 익숙한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한다”며 “공급자 입장에서도 선명한 화질로 복원한 옛 영화를 다시 한 번 상영하면 수익 확대가 가능하니 일석이조”라고 했다.
◆방송·드라마, 복고 트렌드 주도
방송계 추억 마케팅은 드라마와 가요 프로를 망라한다. 드라마 쪽의 기수는 단연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응답하라 1997’(2012)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래 ‘응답하라 1994’(2013) ‘응답하라 1988’(2015)가 내리 히트 치면서 사회 전반에 복고 열풍과 추억 마케팅 붐을 몰고왔다.
중장년 세대는 옛 가요, 패션, 게임 등을 다시 한 번 추억하는 계기가 됐고, 젊은층은 이 문화를 새
[김시균 기자 /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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