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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 |
오르한 파묵의 신간 ‘다른 색들 : 오르한 파묵의 시간과 공간, 문학과 사람들’(민음사 펴냄)은 그런 의미에서 ‘파묵의 세계’로 건너가는 자전적 작가론으로 읽힐 만하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터키의 한 노작가의 삶이 656쪽짜리 두툼한 책에 응축됐다. 소설 집필의 고통과 희열, 소설가가 본 소설가들, 터키 인권의 현실과 풍경, 딸 ‘뤼야’를 향한 짝사랑 등 파묵의 세계가 촘촘히 펼쳐졌다.
매일 치료약을 한 수저씩 삼켜야 하는 환자처럼 문학이란 약(藥)을 복용해야만 하는 자기의 불치병을 고백하며 파묵은 글을 연다. “매일 섭취해야 하는 ‘문학’의 복용량”을 언급한 파묵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 가장 커다란 행복은 매일 반 페이지씩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원하는 문학을 ‘복용’하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곳으로 변한다”고도 너스레를 떤다.
‘쓰는 삶’이 늘 행복한 건 아니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씁니까?”란 질문은 파묵을 ‘예술과 문학은 사치다’란 인식과 ‘순문학 소설이란 뭔가’라는 질문의 사이로 몰아세웠다. 파묵은 “진정성을 향한 깊은 바람”으로 자기가 추구해 온 문학의 결론을 낸다. 문학의 당위성, 쓰는 삶의 가능성으로 저 질문의 답은 확장된다.
소설의 거장이 바라본 소설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책의 백미다. 보르헤스가 “나는 햄릿과 라스콜리니코프(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주인공)의 중간쯤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가 말한 대목을 거론하며 파묵은 “보르헤스의 위치는 카프카와 비교할 수 있다. 카프카가 작가적 정체성을 저절로 찾은 데 반해 보르헤스는 평생에 걸쳐 집착적으로 그것을 형성했다”고 평했다.
파묵이 많은 장(章)에서 거론하는 작가는 단연 도스토예프스키다. 파묵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두고 “문학사의 위대한 발명은 계산하고 계획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작가들이 상상력에 끝까지 매달리며 고심해야만 한다”고 칭송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겨냥해서는 “인간이 써낸 가장 충격적인 예닐곱 편의 소설 중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정치 소설”이라고도 극찬했다.
“책을 넣고 다니는 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이라며 독서의 즐거움을 외치기도 했다. 파묵은 “우리 주위에 있는 자연과 삶의 일부인 멋진 소설은 우리를 삶의 의미에 아주 가까이 가게 하지만, 삶이 부여하는 행복 대신 그 의미와 관련된 행복을 준다”고도 설명했다.
또 “책의 표지는 책에 나오는 세계와 우리가 사는 평범한 세계 사이의 통과 신호 역할을 한다”거나 “책의 제목은 마치 사람의 이름과 같다”며 ‘표지 예찬론’로 펼친다. “너의 슬픈 모습이 나를 얼마나 가슴 아프게 하는지 알아?”라며 딸 뤼야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잔잔한 웃음도 건넨다.
삶의 스펙트럼이 다르다면 한 명의 인간은 그 스펙트럼에 놓인 하나의 색(色)과 같다. 다종다양한 종류의 색이 모여 이 세계의 풍경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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