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상수동 홍익대학교 피카소 거리. 가을비가 쌀쌀한 날씨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20~30대 학생·직장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가게마다 젊은 청춘이 내뿜는 열기와 수다로 후끈했지만 그 가운데 홀로 불 꺼진 채 적막감만 가득찬 한 곳이 있엇다. 이 곳의 터줏대감을 자처해온 라이브클럽 ‘타(打)’(이하 클럽 타)다. 클럽 타는 지난 4일 마지막 공연 후 문을 닫았다.
지난 2006년 6월 문을 연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클럽 타는 언더그라운드 인디밴드 계에선 유명한 ‘와이낫’의 보컬 전상규 씨가 운영해 온 홍대의 대표적 라이브클럽이었다. 한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수상한 뒤 일약 톱가수로 도약한 장재인, 십센치(10cm) 등 스타들의 인큐베이터이기도 했다.
가수 십센치는 클럽 타 오디션을 통해 인디밴드로서 첫 발을 내딛었고, 추운 겨울 홍대 거리에서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하던 가수 장재인 역시 전 씨 배려로 여기서 음악의 싹을 틔웠다.
전상규 씨는 “신인 밴드를 직접 보고 재능을 발굴하고 그 재능을 펼칠 무대를 마련해 주는 게 우리 재미였다”며 “우리 클럽을 개방해 무대에 서고 싶은 친구들을 세워주고 관객은 버스킹(거리공연)처럼 무료로 입장시키면서 10년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왔다”며 전성기를 회상했다.
무대를 원하는 인디 밴드들은 홍대로 모여들었고 소규모지만 마니아 관객들 발길이 이어지면서 홍대 라이브 클럽은 대학가의 새로운 ‘문화발전소’이면서 젊은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이 곳 클럽을 15년 째 찾고 있다는 윤이경(42)씨는 “90년대 초 압구정 오렌지족 문화가 홍대로 전파되면서 한때 흥청망청 거리가 되기도 했다”며 “그 와중에 라이브클럽 문화가 정착되면서 새로운 젊은이들의 즐길 거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클럽 타 처럼 세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홍대 인근에서 최근 3년간 문을 닫은 라이브 클럽은 줄잡아 10여 곳.
1차적인 직격탄은 임대료 였다. 클럽 타의 경우 임대료가 월 35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수년 사이 두 배로 올랐다. 음향과 조명, 스태프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돈’때문만은 아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은 인디밴드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라이브클럽들의 쇠락의 또 다른 배경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출연 한 번에 스타로 도약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으로 속속 진출하면서 ‘싹수 있는 밴드’들을 클럽에서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클럽 타 주인인 전 씨 역시 “더이상 홍대 라이브클럽 판이 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정말 좋은 밴드들이 나와 줘야 홍대를 찾는 사람들도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데 라이브클럽에 발걸음을 하는 실력 있는 신인 밴드들이 줄면서 옛날보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대형 자본 후원 하에 유명아티스트를 초청해 2~3일간 집중적으로 공연을 선보이는 락 페스티벌의 ‘부흥’도 클럽문화 쇠퇴에 직격탄이 됐다.
락 페스티벌은 대규모 야외무대에 두 개 이상의 무대를 세운 채 2~3일간 캠핑하며 음악을 즐기는 축제다. 최근 국내에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밸리 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그린플러그드 서울, 렛츠 락 페스티벌 등 7개의 락 페스티벌이 생겨났는데 한번 공연마다 10만여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트렌드 변화에 따라 라이브클럽들이 관객들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라이브클럽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속속 퇴장하면서 “예술은 가고 유흥만이 남았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라이브클럽이 퇴장한 자리에는 여지없이 댄스클럽이나 주점이 속속 자리를 메우고 있다. 홍대 앞은 서울시내에서 주취폭력과 소매치기 사건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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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호 기자 /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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