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상자 안에 갇힌 건 비단 한 사람이 아닐 거예요. 무고하게 학살당한 양민들이나, 다친 소년병 등, 역사 속 어떤 인물이 될 수 있는 거죠.”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은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 사건, 한국전쟁, 군부독재시대 등 아물지 않은 상처로 뒤덮인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작품으로, 세월 속에 잊혀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설레는 사랑을 하고, 자신만의 꿈을 가진 수많은 사람의, 미처 전해지지 않은, 끊이지 않는 이야기 말이다.
이 작품은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이 작가와 부 연출은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공동 대표로 다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썬샤인의 전사들’은 쉽게 꺼낼 수도 전할 수도 없는 무게가 느껴지는 소재지만,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이하 부새롬 연출과의 일문일답.
Q. 김은성 작가와 달나라동백꽃 공동대표로 함께 하고 있는데, 작품을 봐도 잘 맞는 것 같다. 호흡은 어떤가.
“김은성 작가가 일은 잘 벌인다. 난 그런 성격이 아닌데 은성이는 왕성한 스타일이라 어떤 일이 있으면 먼저 시작한다. 5년 째 하고 있는데 나 혼자 대표였으면 아마 느리게 작업했을 거다. 김 작가에게 그래서 고맙다. 함께 해서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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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두산아트센터 |
Q. ‘썬샤인의 전사들’은 수많은 이야기가 압축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3시간 정도의 러닝시간임에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작품 받았을 때는 훨씬 길었다. 2부는 어느 정도 사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인데, 1부는 시공간 점핑이 많아서 어떻게 표현하고 그릴까 고민이 많았다. 영화라면 장면이 그려지는데 연극이니까, 한계가 있고, 가난해 보이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연습에 할애했고 시도도 많이 했다. 배우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Q. 그럼 무대화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곳은 어딜까.
“가장 크게는 연극으로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대본 받았을 때, 배우들이 관객 통로로 등장하는 콘셉트를 생각했다.
Q. 그래서인지, 등장하는 관객들이 아주 가까이에 인물들로 다가오는 것 같더라. 역사에 관한 내용이 나올 뿐 아니라, 연극은 장소적 제한이 많아, 배우들에게 특별히 강조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배우들에게는 인물들이 생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머릿속에 흑백사진 같지 않았으면 말이다. 또, 선호와 명이가 나올 때 마냥 사이좋고 예뻐서, ‘남매는 서로 위하고 실제 그렇지 않다. 괴롭히기도 한다’고 했다.”
Q. 영상에 자막은 작품이 한승우의 소설 속 얘기라는 것을 느껴지게 만든다. 썼다 지웠다 하는 것뿐 아니라 소리까지. 마치 소설을 보면서 상상하는 장면을 눈앞에 구현해낸 듯 하다.
“자막에 지문을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상세한 상황 등을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극장에서 글을 읽는 경험은 어떤 걸까 그런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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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승우부터 나선호, 강호룡. 송시자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시공간을 점핑하기도 해, 인물들이 헷갈리지 않을까 고민하지는 않았나.
“인물들이 헷갈리지 않았다, 모두 새로운 인물들이 아니지 않나. 위안부나 사상 등 많이 알고 있겠지만,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했다. 한 20대는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더라. 특히 호룡이라는 인물은 중국 내전을 모르면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를 것이다. 아마 모르는 분이 태반일 것 같은데, 정보를 다 드리지는 않았다.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장면은 영상을 더했다.”
Q. 역사를 모르더라도, 그 개인사에 집중돼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될 것 같더라. 공감하고,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 아닌가. 하지만 불편하게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다. 승우의 딸 봄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긴 한다.
“물론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본다. 세월호도 불편하다고 하는 분들부터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분이 잘못된 것 아닌가.”
Q. 최근 영화 뿐 아니라 연극을 보면 세월호를 떠오르게 하긴 하는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등 창작 활동하는 분들에게 세월호가 끼친 영향은 큰 것 같고, 작품에도 담긴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작품을 생각할 때 항상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Q. 그렇다면 김은성 작가가 ‘썬샤인의 전사들’을 내놨을 때 기분이 남달랐을 거 같은데.
“김 작가가 작품 내놨을 때 반가웠다. 나 역시 하고 싶은 얘기였다. 한국이 역사 청산을 못했기 때문에 세월호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참사가 났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자체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지만, 왜 켜켜이 쌓여서 안 건져지고 있는지 말이다. 몇 십 년 동안 역사가 꽉 붙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Q. 점점 타인에 대한 생각이 점점 결여돼 그렇지 않나. 타인이나 역사가 아닌 오늘 하루 사는 것이 급급하니.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연민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진 느낌이다. 상황이 뻑뻑한데, 타인에 대해 생각할 틈이 있겠는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돼야 생길 수 있는 마음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상황, 사회적인 분위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사는 삶’이 되가니. 마찬가지로, 역사보다 당장 시험이나, 취업이 시급하니 어린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Q. 그렇기 때문에 ‘썬샤인의 전사들’을 많은 관객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가.
“어떤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음 한다. 원래 알고 있던 분들은 공감을 하겠지만, 몰랐던 분들이 보고 고민을 한다면 그게 변화한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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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장면이 그렇다. 특별하게 한 장면이 아니라, 속이 상하고 끔찍하다. 객석에 있을 때는 한숨도 못 쉬지만 모니터 할 때는 맘껏 한숨을 쉰다. 답답함이 작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더 답답하다. 만약에 내가 외국인이었으면 그냥 ‘불쌍하고 안 됐다’라고 하면 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땅에 있었던, 생기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Q. 그래도 마지막에 서미연(승우의 아내)의 잉태는 희망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마지막 뱃속에 있는 아이는 10달 후에 태어날 아이가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태어날 아이다. 그런 의미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Q. ‘썬샤인의 전사들’을 보고 역사를 너무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더라. 많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일 것 같은데.
“요즘은 역사와 내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생각을 잘 못한다. 사상을 다룬 영화를 본다고 치면 ‘안됐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타인이 슬픔에 ‘나 역시
Q. 그래서인지 커튼콜 때 박수가 쳐지지 않는 것 같다.
“박수를 못 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박수를 친다면 내가 작품을 잘 못 만든 것 아닌가(웃음). 나머지는 관객 각자가 가져가는 몫이고.”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