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이에게 세상은 온통 제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양 느껴지는 법. 상대는 마치 나만을 위해 재단된 것 같고, 운명적 만남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싶어진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관계가 발전하고 완벽하게만 보이던 상대에게서 상상도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문득 마음 한 켠 미묘한 불안이 스민다. 내게 사랑을 말하는 이 사람을 나는 얼만큼 알고 있을까.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내달 11일 개봉하는 영화 '얼라이드(Allied)'는 이 같은 사랑과 불안의 감정을 주재료 로 삼는다. '포레스트 검프''캐스트 어웨이''플라이트' 등 전작에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뽑아내 솜씨 있게 조리하는 데 일가견을 보인 할리우드 거장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이다. 동시대 최고 스타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인으로 분했다. 최근 '브란젤리나' 커플의 이혼이 피트와 꼬띠아르가 촬영 중 실제 연인으로 발전한 탓이라는 루머가 퍼지며 더욱 화제가 됐다.
배경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영국 정보국 장교 맥스 바탄(브래드 피트)와 프랑스 비밀요원 마리안 부세주르(마리옹 꼬띠아르)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독일 대사를 암살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생판 남이던 이들은 작전을 위해 부부로 위장하고, 냉철하던 맥스는 아름답고 능란한 마리안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긴다. 임무를 마친 둘은 런던으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리고 갓 태어난 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맥스는 상부로부터 마리안이 독일 스파이인 정황이 포착됐다며 사흘 안에 그녀의 무고를 밝히지 못하면 제 손으로 아내를 죽이고, 불복시 자신도 사형 당할 것이란 소식을 듣는다.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강한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힌 맥스에게 마리안의 모든 행동과 표정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서로를 처음 봤던 카사블랑카의 그 밤처럼.
전쟁 영화와 스파이물의 탈을 썼지만 '얼라이드'는 결국 우직한 러브스토리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남녀의 미묘한 감정만을 담백하게 좇는다. 감독 스스로 '카사블랑카'(1949)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밝힌 만큼, 영화는 극도의 서스펜스나 사실적인 전쟁 신보단 지난 세기의 위대한 로맨스 서사를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다소 구식이고 예측가능한 면모는 세련된 스파이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실망을 줄 수 있지만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값진 시간을 선사한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 부부로 위장한 남녀 스파이 간 사랑이 싹트는 일이 많았고, 그중 한 명이 이중간첩인 것이 발각될 경우 직접 배우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룰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입에 깊이를 더한다.
피트와 꼬띠아르의 노련한 연기력도 제몫을 다한다. 요동치는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 미세하게 변화하는 눈빛과 표정,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는 감독의
개봉은 내달 11일, 15세 이상 관람가.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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