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이 흐드러지는 9월의 초입, 제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됐다. 대상작인 강영숙의 '어른의 맛'을 비롯해 7편의 본심 진출작이 실린 이 작품집은 한국문학의 한 시절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한 최고 소설들의 성찬이다.
강영숙의 '어른의 맛'은 사십 대 중년이 겪는 심리적 성장통을 그린 단편이다. 미세먼지의 습격이 일상이 된 서울. 기혼인 승신과 호연은 남몰래 만남을 이어가지만 이 불안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앞날에 대한 아무런 낙관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견딜 뿐. 승신은 수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학창시절의 친구 수연의 누추한 일상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 자신의 입에 흙을 한 움큼 집어넣는다. 그 맛은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먹는, 마치 황사를 삼키는 것 같은 아몬드 비스킷의 맛이었다.
소설은 불안과 피로, 권태가 상존하는 비루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인물이 겪는 생의 누추를 추슬러낸다. 심사위원회는 '어른의 맛'을 두고 '자기 경험의 세계가 순금같이 구현된 소설'이라 평했다. 강영숙 작가는 작은 디테일을 무심한 듯 분산해 배치하며 실감과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짓고 거기에서 삶의 비의를 밝히려 한다. 이 비관적인 세계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작가는 하기 힘든 두툼한 이야기를 써냈다. 작품 말미에 함께 실린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평론은 "작가는 어른 된 세계, 속물성이 지배하는 세계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의 슬픔 같은 것을 그리고자 한다"라고 읽어냈다.
작품집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별미는 강영숙의 자선작 '라플린'이다. 루푸스라는 이리의 이름을 딴 병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다. 미국 네바다주의 라플린은 고도 600m에 자리잡은 사막의 카지노 도시였다. 여름 한낮이면 기온이 45도까지 높아지는. 그는 침대에 누워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모래 입자를 바라보고, 먹을게 없어서 죽어가는 전갈과 곤충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숙박비가 없어 모텔에서 쫓겨나기 직전 광고지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한국에서 온 노인들의 관광가이드. 파킨슨병을 완화시켜준다는 사막의 뜨거운 바람을 찾아온 이들이 손님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다. 바로 사막에서 모래먼지처럼 사라지기 위한 죽음을 향한 여정이었다. 모뉴먼트 밸리의 중심, 소용돌이처럼 모래가 가라앉는 곳에 인도한 뒤 그는 노부부의 마지막을 천천히 지켜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는 부부에게 라플린의 일출을 보여주지 않았음을 떠올리고, 후회를 한다.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과 동물들의 죽음과 삶을 교차시키는 묵직한 소설이다.
책에는 대상 수상작 외에 2016년 대상 수상작가인 조해진 소설가의 자선작 '작은 사람들의 노래'와 본심에 올랐던 추천 우수작 6편을 함께 실어
선보인다. 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는 기준영 작가의 '조이', 김금희 작가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박민정 작가의 '당신의 나라에서', 손홍규 작가의 '눈동자 노동자', 조경란 작가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표명희 작가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이 실렸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