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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시인 김명순(1917~1950)의 '유언' 가운데 일부다. 절제를 강요받은 사람이 느끼는 분노를 드러낸 이 작품을 보면 김명순의 시 세계가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빼어난 문재(文才)에도 오늘날 김명순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 최초로 등단한 여성 작가지만 가부장제의 굴레에 짓눌려 하나의 시인으로 평가받지 못한 때문이다. 올해는 김명순이 1917년 계간지 청춘에서 '의심의 소녀'로 당선되며 등단한지 꼭 100년을 맞는다. 김명순 등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심포지엄 '다시 살아나라, 김명순!'이 서울 충무로 문학의집에서 12일 열렸다.
김명순을 이해하려면 그의 비운과 마주해야 한다. 1896년 평양 대지주 김희경의 딸로 태어났지만 모친이 기생인 때문에 김명순은 모진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 5개 국어를 구사할 만큼 빼어난 언어 감각을 소유한 김명순은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시작에 천착했다. 1917년 춘원 이광수의 극찬과 함께 등단한 시인 김명순의 삶은 그러나 문학 때문에 더욱 질곡에 빠졌다. 19세 일본 유학생 김명순은 한국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오히려 문란한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김명순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은 다름아닌 소설가 김동인이다. 그는 김명순을 모델로 소설 '김연실전'을 짓는데, 주인공을 자유연애라는 명분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인물로 그린다.
문학평론가 서정자(초당대 명예교수)는 이날 "김명순이 당한 것은 폭력 보다는 테러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 유학 시에 당한 데이트 폭력을 여러 차례 실명으로
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김명순 다큐멘터리를 상영했고 시를 낭송했으며 헌화식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와 한국여기자협회, 성주재단이 후원했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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