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왼쪽)와 덕혜옹주 [사진출처=문화재청] |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1912~1989)가 남긴 낙서다. 열세 살 때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 덕혜옹주는 196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덕혜옹주는 오빠 영친왕(이은)의 부인이었던 이방자 여사가 살고있는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갔다. 망국의 한을 간직한 두 여인은 1989년열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낙선재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 낙선재 전경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
↑ 낙선재 일대 배치도 [그래픽=이지연 인턴기자] |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 재위시절인 1847년 건립됐다. 조선왕조에서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8살에 즉위한 헌종은 23살에 후세 없이 요절했다. 정치 개혁과 왕권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낙선재를 건립한 헌종은 할머니 순원왕후를 위한 수강재를 중수하고, 사랑했던 후궁 경빈 김 씨를 위해 석복헌을 세웠다. 현재 낙선재와 수강재, 석복헌을 통칭해 '낙선재 일대'라고 부른다.
↑ 후원에서 내려다 본 낙선재와 낙선재 현판 |
↑ 낙선재 후원의 상량정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
낙선재 오른편에는 경빈 김씨 처소 석복헌(錫福軒)이 있다. 석복헌은 '복을 내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세자 탄생을 기대하는 헌종의 마음이 녹아있다. 곳곳에는 호리병·포도 문양이 보이는데 이 또한 출산을 염원하는 의미다. 석복헌은 수강재와 다르게 대문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경빈 김 씨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라는게 김 해설사의 설명이다.
↑ 매화가 움튼 낙선재 후원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
문화유산해설사 준비생 이지선 씨(32)는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의 거처로만 알았던던 낙선재가 건물마다 사연이 깃들여있는데다 매화 절경도 아름다워 혼자 보기에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 후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
일상이 따분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낙선재 후원에서 봄바람을 맞아보는 게 어떨까.
[디지털뉴스국 신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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