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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래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 |
게임은 예전처럼 밖에서 뛰어놀 환경이 안 되는 현 세대의 놀이 문화다. 옛날 아이들이 숨바꼭질이나 소꿉놀이를 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PC나 모바일 게임으로 친구를 사귀고 소통한다. 게임은 아이들에게 생활이자 일상의 문화다. 이제 아이들의 삶에서 게임을 어떻게 떼어놓을지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잘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게임이용 방법을 알려주는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하다. 정부도 많은 예산을 투입해 청소년과 학부모 대상의 게임 리터러시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체부의 리터러시 사업은 게임문화의 이해와 코딩교육, 진로교육을 포함하고 있고, 부모 세대에게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어떻게 지도할지 알려준다.
게임은 상호작용적 미디어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온라인 게임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 해외 매체에도 온라인 게임을 통해 경영자들이 리더십을 배우는 연구 사례가 종종 실린다.
게임은 신체보다 전략적 판단 등 두뇌를 많이 사용한다. 게임을 통한 두뇌 싸움을 관중과 함께 즐기는 것이 바로 e스포츠다. 경쟁과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e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 유사하다. 승부를 위한 전략적 사고로 지적 능력도 기를 수 있다. 또, 팀 단위의 경기로 협업과 소통 능력도 배우게 된다.
미국의 존 벡과 미첼 웨이드라는 학자는 저서 '게임세대 회사를 점령하다'에서 게임세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집어냈다. 게임은 집중을 요구하기에 게임세대는 집중력이 뛰어나다. 승부에 집착하다보니 성취욕구도 강하다. 게임을 통해 멀티태스킹과 상호 협력의 방법을 배운다. 게임은 언제나 다시 할 수 있기에 게임세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게임세대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게임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지는 않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역사는 오래됐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소년의 모방 자살을 막는다며 당시 금서로 지정됐다. 사진은 영혼을 뺏는다는 오명을 썼고, TV도 폭력·선정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위해 셧다운제를 도입할 때도, 최근의 게임 과몰입 질병화 이슈 역시 게임에 대한 두려움이 배경에 깔려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 과몰입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에 포함시킬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올해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의 질병화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든지 논의는 다시 재개될 수 있다.
게임이 문제라면, 문제의 원인과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 원인을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결과만 보고 부정적 낙인을 찍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게임은 소금처럼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소금을 많이 넣으면 음식이 짜고 건강에 나쁘지만 적당한 소금은 입맛을 돋우고 건강에도 좋다. 지나친 게임 과몰입은 문제가 되나, 적당한 게임 이용은 여가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결국 사용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은 학업스트레스와 같은 환경적 요소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게임 과몰입은 문제의 원인이기보다는 결과다. 게임 과몰입 청소년을 오랜 시간 연구한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에 따르면, 게임으로 문제가 되는 청소년 대부분이 우울증 같은 공존 질환을 가지고 있다 한다. 따라서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환경부터 개선해
일부 문제가 있다고 게임에 '질병'이라는 낙인을 찍어 배제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게임 과몰입 질병화는 사회적 갈등만 야기할 뿐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바야흐로 게임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퇴보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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