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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손님들. [사진제공 = 국립극단] |
'손님들'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권위주의에 대한 임상보고서로 이해하면 쉽다. 부모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같기 때문이다. 객석에 들어서면 해맑은 얼굴을 한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소년의 옆에는 군복을 입은 아버지와 퀭한 얼굴을 한 어머니가 앉아 있다. 아버지는 정돈하지 않은 머리 때문에 한눈에 봐도 무능력한 가장 같고, 어머니는 눈 화장이 번져 잦은 폭력에 시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 부모에게 소년은 함께 밥을 먹자면서 끊임 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시간이 갈수록 관객은 연극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은 부모가 화해하는 것을 바라며 고양이, 조각상, 귀신을 초대한다. 모두 비현실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소년이 마주한 현실은 극단적으로 불행하지만 손님 셋이 잇따라 찾아오면서 다소 웃음을 찾아간다. 워낙 현실과 동떨어진 손님이 찾아오다 보니까 관객은 금세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말을 하는 고양이, 움직이는 조각상, 거지 차림의 귀신까지. 가정 불화 때문에 마음 붙이지 못하고 외톨이로 사는 소년의 삶을 연극은 은유로 관객에 전달한다. 이는 현실을 현실로 자각하기에는 너무도 불행한 소년의 생각을 상징하는 듯해서 슬프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극은 점차 한국 사회에 드리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극이 진행될수록 소년의 불행이 어디서 왔는지 관객은 차츰 알게 된다. 아버지는 군인으로 성공을 꿈꿨지만 좌절한 남성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다 보니 '집안 호랑이'가 된 인물이다. 소년의 어머니 또한 갈등 속에서 건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군인의 아내로 영부인이 되고 싶었지만 꿈이 좌절되자 소년을 학대하며 세월을 보낸다. 소년의 부모는 어느 누구도 소년의 삶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할 뿐. 특히 스스로 평가하는 기준이 권위에 의한 허울일 뿐이니 소년은 가족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겉돈다. 소년은 부모가 서로 소통하면 불행한 가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노력하지만 매번 허사로 돌아간다. 부모의 불화는 결국 폭력으로 치닫고 만다. 실패한 권위가 만들어낸 파국은 이처럼 죄 없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가족에서 개인으로 거듭나지 못한 소년은 여자친구와 관계에서 빛을 찾는다. 서로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관객을 웃게 만든다. 그럼에도 소년은 빛과 어둠의 대비가 심해질수록 우울한 감정에 빠져든다. 이 작품은 알려진 것처럼 존속살해를 모티프로 한다. 소년이 가족을 깨면서 추구한 것은 어쩌면 여자친구와 맺었던 평범한 사랑이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가정에 찾아오는 불행이 허위로 가득한 권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관객은 슬픔을 공감한다.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적 권위에 짓눌려 삶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가. '손님들'은 어쩌면 관객들이 작품의 손님으로 참여해 각자의 삶을 돌아보라고 한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당신들이 손님이었다면 보내버리면 될텐데"라는 소년의 말은 이 작품의 메세지를 집약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개인의 삶을 직시하는 노력을 지속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의 감각', '칼집 속에 아버지'에서 한국적 리얼리즘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연출가 김정과 극작가 고연옥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 없이 실력을 드러낸다. 지난해 각종 연극상을 휩쓴 작품으로 올해 국립극단이 초청해 무대에 올렸다. 연출가 김정은 "'행복이란 그토록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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