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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제 소설은 어둡지 않아요…빛을 향해 가는 중이므로"

기사입력 2018-12-20 09:21 l 최종수정 2018-12-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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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와 함께 가만가만 읽어보는 겨울밤의 낭독회`가 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렸다. 소설가 한강(오른쪽)이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함께 초기작 단...
↑ `한강 작가와 함께 가만가만 읽어보는 겨울밤의 낭독회`가 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렸다. 소설가 한강(오른쪽)이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함께 초기작 단편을 읽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아리아 다 카포(aria da capo)'가 멈추자, 소설가 한강(48)이 책상에 앉았다. 온통 검은 옷을 걸친 작가에게 300명 관중의 시선이 멈췄다.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세 권의 소설집 리뉴얼 출간을 기념해 문학과지성사가 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연 '한강 작가와 함께 가만가만 읽어보는 겨울밤의 낭독회'였다. 눈동자를 앞머리로 살짝 가린 한강은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독자와 만났다.
낭독회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이광호(55)와 한강은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을 번갈아 읽었다. 베란다 쪽방에서 야경과 잠들며 생과 불화하는 여성을 담은 1995년작 '어둠의 사육제'와 "어디로 가든, 나는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라던 명문장을 남긴 1994년작 '여수의 사랑'부터 허공을 채웠다. 한강은 두 소설을 만 23~24세에 썼다. '20대 소설이라곤 믿기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은 1994년 신춘문예 당선작 '붉은 닻' 발표 직후에 쓰인 초기작이다. 당시 한강 본인마저 초판 작가 후기에서 "되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소회할 정도로 20대 한강은 웅숭깊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흔들리게 되는 시기에 썼던 소설이에요. 어린 친구가 왜 이런 소설을 썼냐고 말 많이 들었어요. 전 다르게 생각해요. 어릴수록 더 캄캄하잖아요."
소설가 한강(오른쪽)이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함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 소설가 한강(오른쪽)이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함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1997년 발표작 '내 여자의 열매'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채식주의자'의 씨앗이 된 작품이다. '오늘의 한강을 있게 한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는 출판사의 광고 문구는 괜한 문장이 아니다. 식물로의 변화를 꿈꾸는 영혜의 이미지가 여기서 꿈틀댔다.
"식물로 변하는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식물로 몸이 바뀌는 아내와 그를 바라보는 남편이 있죠. 소설의 7장은 식물로 변한 아내가 어머니에게 남기는 독백인데, 당시엔 제가 소설에 이탤릭체를 쓰지 않던 때였어요. 아마 당시에 이탤릭체를 썼다면 '채식주의자'의 영혜 독백처럼 7장이 이탤릭체로 쓰여졌을 거예요. 독백에서 진실이 드러나니까요."
맨부커상 수상 이후 혹자는 이 소설의 아내, 혹은 '채식주의자' 영혜의 가면을 한강의 표정에 덧씌우곤 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을 묻자 한강은 "다 애착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인물이어서 질문이 어렵다"고 웃으면서도 "뭔가 저와 비슷하다고 여겨 애착이 가는 인물은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의 정희"라고 답했다.
한강은 올겨울 눈(雪) 3부작을 쓰는 중이다. 두 편은 세상에 나왔고, 마지막 한 편을 집필 중이나 "과연 완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어떤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안 됐던 게 아닌가 싶어요. 모든 전제를 허물고 쓰려고 해요. 진실이라고 믿는 만큼만 쓰면 된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눈이란 주제가 나온 김에 겨울의 느낌을 묻자 한강은 "겨울은 내게 차갑지만은 않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생생하게 알게 되고, 체온을 가진 존재라는 근원성을 감각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011년작 '회복하는 인간'을 읽은 이광호 평론가가 오래 전 소설과 대면하는 기분을 물었다. 한강은 "예전 소설을 읽으면 낯설고 멀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교정 과정에서 다시 보니 저라는 사람의 글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비슷한 질문을 변주하고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고 회고했다.
소설가 한강이 낭독회 후 열린 사인회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 소설가 한강이 낭독회 후 열린 사인회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 제공 = 문학과지성사]
리뉴얼된 소설집들은 하나의 시리즈로, 특히 표지가 압권이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는다. 한지에 사진을 프린팅하는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을 담았는데, 이미지화된 시(詩)에 가깝다. '현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는 이정진의 한 작품을 두고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강은 "저작권 문제로 책 표지를 바꿔야 했던 차였는데, 이정진 작가의 도록을 선물 받았고 너무 마음에 들어 이민희 편집자에게 건넸다"며 "책이 너무 이쁘죠?"라고 관중에게 물었다.
한강은 '음반 2집'을 예고키도 했다. 믿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한강은 1집 음반을 낸 '가수'다. 2005년께 꿈에서 들은 노랫가락을 가사와 계이름으로 옮겨적고 노래를 불러 테이프에 녹음한 일화는, 아는 사람만 안다. '12월 이야기' '내 눈을 봐요' 등 한강의 자작곡 10곡은 2007년 출간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의 뒤표지에서 발표됐다. 지금은 절판 상태다.
"두 개의 신곡을 보유 중"이라는 폭탄발언을 한 한강은 관중에게 "2집을 정말 낼 수 있을지는 말 못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집 출간 계획에 대해선 "첫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낸 지 5년이 지났는데 이제 쌓인 게 세 편"이라며 "글쎄, 죽기 전에 시집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낭독회는 시종일관 웃음기 가득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관중 앞에서 소설가 한강은 웃기도 자주 웃는 '보통 인간'이었다. 하지만 소설이 어둡다는 반응에 휩싸이다 보니, 세간의 오해가 쌓일 법도 하지 않은가. '소설이 어둡다'는 평에 대해 한강은 침착하게도 발끈했

다. "어둡다는 얘길 하도 들었어요. 제 입으로 '내 소설은 어둡지 않다'고 말하면 다들 웃으시긴 해요. 그러나 저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고요? 빛을 향하고 있다면 그건 어두운 상태가 아니니까요.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므로, 제 소설은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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